회고록

경인에너지(주)

사투리76 2019. 3. 20. 00:34

경인에너지()

  내가 피땀 흘리며 거들어 설립하고 근무했던 경인에너지()1969년 한국화약(현 한화)과 미국 유니온오일(현 코노코필립스)사가 합작 투자하여 만든 대한민국의 세 번째 정유회사이다. 유니온오일은 1983년 말에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한화그룹이 단독으로 경영하게 되었고, 1987년에 기업을 공개하고 증권거래소에 상장하였으며 1994년에 한화에너지 Energy Plaza로 상호를 변경하였다가, 1999년에 현대정유 OILBANK(현 현대오일뱅크)로 경영권이 이전되면서 인천정유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2001년에 회사 정리 절차가 개시되고 200512월에 SK그룹에 인수되어 20063월에 SK인천정유(SK Incheon Oil)로 상호가 변경되었다. 초기 정유 시설은 5B/D Topping Unit였는데 후에 6B/D 정유공장이 되었다.

 

 

Topping Unit란 원유를 간단하게 정제하여 납사(Naphtha)란 경질유 성분과 벙커씨유라는 중질유 성분으로 크게 분류하는 간이원유정제 설비를 뜻한다. 즉 경인화력발전소에서 필요로 하는 벙커씨유를 자체적으로 생산해서 공급하겠다는 뜻으로 짓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국내 석유수요가 갑자기 늘어나자 비교적 자연스럽게 LPG와 휘발유 및 등유나 경유까지도 생산하는 정유공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공으로 국내 전력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반해 발전시설 건설이 부진하자 정부는 민간 발전소 건설을 허가하여 동해화력, 호남화력과 더불어 경인화력발전소(京仁火力發電所)가 탄생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급격한 산업화로 인하여 전력수요를 한국전력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워서 생긴 조치였다.

경인화력발전소는 1969219일 건설공사를 착수, 1972219일 발전을 개시하고, 같은 해 벚꽃이 만발하는 417일에 준공하였으며, 건설비는 13,750만 달러(자가자본 1,625만 달러, 상업차관 12,125만달러)가 소요되었다. 주기기는 일본 히다치제작소(日立製作所)에서 제작, 공급하였으며, 보일러는 반옥외식 중유 전소형이고, 터빈은 1624002기로 반동, 재열식이다. 준공 후 연간 약 20h의 전력을 생산해 오고 있으며, 19691124일 한국전력공사와 체결된 전력수급계약에 따라, 발전되는 전력은 전량 한국전력공사에 판매되었다.

 

 

전력수급계약 체결과정에서 가장 난제(難題)는 투자보수율이었다. 한전이 경인에서 전기를 매입하는 가격은, 경인이 실제 지출한 비용에다 ROI(Return on Investment=투자보수율) 더한 값으로 하며, ROI는 지불 이자와 이익으로 구성되는데 그 비율은 투자액의 11.5%로 결정되었다. 즉 발전소 건설자금에 11.5%를 곱한 값에 해당하는 돈을 받아서 차관 이자를 갚고 남은 금액이 경인의 이익이 되는 것이라, 한전이 여기 합의를 해 놓고도 속으로는 경인을 매우 못 마땅하게 생각하였다. 그때 국제금리가 9%대여서 실제 경인의 수익은 2.5%정도였는데도 말이다.

 

 

KBS경인에너지 확장계획에 대한 인터뷰도 하였다.(1978.06.5. 1라디오 방송. https://youtu.be/6jZ8MtgZBoc 경인에너지() 1978 kbs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