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식물과 자연

밤섬 가마우지떼, 똥 한번 치우는ㄷ 2억

사투리76 2018. 4. 18. 08:26

팔당댐 등 서식하며 한강서 사냥
1500여마리 밤섬에 들러 배설… 섬 전체에 버드나무 죽는 백화현상

중국 등서 월동하러왔다 눌러앉아… 포획 등 개체수 줄일 방안 필요

지난 15일 오후 새까만 새 400여 마리가 떼로 날아와 서울 한강을 덮쳤다. 원효대교와 한강대교 사이였다. 강변에 앉아 한가롭게 낚시하던 김모(67·영등포구)씨는 "독수리 떼 아니냐.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다"며 몸서리쳤다. 공포의 새 떼는 번식기를 맞아 영양 보충을 하러 나온 민물 가마우지 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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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물 때문에 하얗게 변한 밤섬숲 - 16일 서울 한강 밤섬으로 몰려든 민물 가마우지 떼가 흰 배설물로 뒤덮인 버드나무 가지 위에 앉아 있다. 4~6월 번식기를 맞은 가마우지는 떼를 지어 한강으로 몰려든다. 이들이 점령한 밤섬 나무들이 배설물로 고사하고 인근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지호 기자

그들은 20분간 강 한가운데서 누치와 잉어를 낚아 포식하고는 줄지어 인근 밤섬(栗島)으로 날아갔다. 수백 마리가 날아가며 뿌린 하얀 새똥이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어경연 서울동물원 종보전연구실장은 "2~3년 전부터 생겨난 기이한 현상"이라고 했다. 김창회 국립생태원 박사는 "관광 명소인 강원 속초 조도(鳥島)와 춘천 버드나무 군락지가 민물 가마우지에게 점령당해 흉하게 변했다"면서 "서울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고 했다.

◇번식기 맞아 찾아든 공포의 가마우지떼

4~6월 번식기를 맞아 한강에 민물 가마우지가 몰려들고 있다. 그들이 본거지로 삼는 한강 밤섬(27만9000m²)은 배설물에 덮여 신음한다. 흰 똥을 뒤집어쓰고 고사(枯死)하는 버드나무가 늘고 있다. 밤섬 인근에는 민물고기 32종이 살고, 가지가 길쭉한 버드나무가 많아 서식하기에 좋다. 밤섬에서 발견되는 민물 가마우지는 2010년 427마리에서 2015년 1506마리로 크게 늘었다. 한강 전체에는 3000여 마리가 관찰된다.

한강 출몰 민물 가마우지의 하루 행로

서울시는 밤섬 나무 보호를 위해 수시로 배설물 청소를 하고 있다. 한 번 청소에 2억원이 투입된다. 지난달에는 청소선 3대, 청소 보조선 10대, 공무원 40명을 투입해 3일간 밤섬 버드나무에 물대포를 쐈다. 시 관계자는 "몇 년 전만 해도 섬 남쪽에만 백화(白化) 현상이 있어 하루면 청소가 끝났는데, 최근엔 섬 전체가 하얗게 뒤덮여 사나흘이 걸린다"고 했다.

한강에 출몰하는 민물 가마우지는 '팔당댐파'와 '수원서호파'로 나뉜다. 경기도 하남 팔당댐에 1500여 마리, 경기도 수원 서호에 600여 마리가 터를 잡고 번식하고 있다. 이들은 매일 한강으로 출근해 먹이 사냥을 한다. 일부는 밤섬의 버드나무를 침대 삼아 몇 달씩 외박도 한다.

민물 가마우지가 한강으로 몰려드는 이유는 본래의 터전인 러시아와 중국이 가마우지 떼로 포화 상태이기 때문이다. 중국 동북 3성에서 서울로 월동(越冬)하러 왔다가 아예 눌러앉은 경우가 많다. 중국에서 살다 신변의 위협을 느껴 피란 온 경우도 있다. 중국에선 민물 가마우지가 별미로 꼽힌다. 한 마리에 1000위안(17만원) 정도에 거래되고, 남부 지방에선 어부들이 민물 가마우지 목에 줄을 감아 '낚시 노예'로 쓴다. 김해니 경희대 조류연구소 연구원은 "과거 민물 가마우지들은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나고 봄에 떠나는 겨울 철새였는데, 최근엔 사계절 내내 머물며 번식까지 한다"고 했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1999년 269마리에 불과하던 국내 민물 가마우지가 2016년 처음으로 1만 마리를 돌파했다.

한강의 풍부한 먹이도 민물 가마우지 떼를 부른다. 유정칠 경희대 한국조류연구소장은 "한강에는 민물 가마우지가 잘 먹는 누치와 뱀장어가 많다"면서 "민물 가마우지는 소통이 활발한 새로 한강 어디에 먹이가 많은지 그들 간에 소문이 쫙 퍼진 상태"라고 한다.

◇속초·춘천처럼 서울도 생태계 위험

빠르게 늘어나는 한강의 민물 가마우지가 생태계 균형을 위협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민물 가마우지는 수면 아래 5~6m로 잠수해 뱀장어·누치·잉어를 닥치는 대로 낚아 삼킨다. 한강 수계 어민들은 "민물 가마우지가 출몰한 뒤로 뱀장어 어획량이 줄었다"고 한다. 다른 조류의 번식지를 빼앗기도 한다. 중랑천에선 민물 가마우지에게 먹이 뺏긴 왜가리들이 청계천 상류로 도망가기도 한다.

민물 가마우지로 인한 백화 현상의 피해가 서울 곳곳으로 번질 수도 있다. 최근 서울 광진구 건국대의 일감호(湖), 청계천·중랑천 합류부에도 민물 가마우지가 100마리 가까이 몰려들어 식물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이진희 생태연구소풀잎 박사는 "민물 가마우지가 급증한 일본에선 총으로 쏴서 그 수를 줄이고 있다"면서 "민물 가마우지를 한강에서 쫓아봤자 다른 지역 피해가 커질 수 있으니 포획을 허용하거나 따로 관리해야 한다" 고 했다.


☞민물 가마우지

한반도에는 민물 가마우지, 가마우지, 쇠가마우지 3종이 서식한다. 민물 가마우지와 달리 가마우지·쇠가마우지는 서해·동해 등 바닷가에만 산다. 한강에 출몰하는 민물 가마우지는 몸길이가 1m 정도로 크고 온몸이 새까맣다. 전국 10여 곳에 번식지가 있다. 몸집에 비해 먹성이 좋다. 과거 중국 어부들이 목에 줄을 감아 고기잡이용으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