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사항

건천 당수나무의 어제와 오늘

사투리76 2021. 4. 30. 11:08

건천 당수나무의 어제와 오늘

 

 

건천 당수나무의 어제와 오늘

 

 

내가 어렸을 때 건천 시장 입구에 있던 ‘당수나무’(당산나무)는 건천의 상징이었다. 건천은 서라벌 육촌 시절 ‘무산 대수촌(茂山 大樹村)’이었고, 그 대수(大樹)란 바로 노거수(老巨樹)인 ‘당수나무’라고 믿어 왔기 때문에. ‘고향’이란 말과 함께 떠오르는 그 당수나무를 생각하며 건천의 어제와 오늘 및 내 고향에 섰던 나무들까지 한 번 뒤돌아서 조명해 본다.

 

지금의 ‘건천보건지소’ 앞 도로변이 예전엔 건천의 교통 요지였다. 거기 대구선 ‘건천역사’가 1918년 10월 31에 생겼으니 소위 말하는 ‘구정기정(구정거장)’이었고, 그때는 협궤철도로 달리던 기차를 ‘가시랑차’라고 불렀으며, 그 후에 광궤철도가 부설되면서 건천역은 몇 백 미터 북쪽에 1939.6.1. 새로 지어졌다고 한다.

‘구정기정’ 앞에는 ‘윤갑술네 주막’이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 ‘학서’ 어른이 1940년 정초에 친구 분들과 노시다가 갑자기 쓰러지신 곳이 ‘윤갑술네 주막’이기도 하다. 광복 후에는 거기가 시외버스, 시내버스, 택시 등의 합동정류소로 오랫동안 건천의 교통 중심지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그 터조차 없어졌다.

조금 남쪽으로 내려가면 ‘건천우체국’이고 그 앞에 아름드리에 키 크고 둥그렇고 빨간 우체통이 서 있었으며, 4번국도 건너 동편에는 ‘번답못’이란 자그만 연못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서 4번 국도(지금의 내서로)란 감포에서 경주, 영천을 거쳐 전북 군산까지를 잇는 지방 도로이다. 광복 때까지, 우체국 남측의 개울 건너에는 ‘삼분이(山本)’란 왜놈의 양철지붕 집과 복숭아밭이 있었고 4번국도 건너 동편에도 과수원이 있었다.

‘건천우체국’에서 건천학교를 지나 건천시장 입구까지 이르는 길 양편에는 가로수로 아름드리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는데, 광복 직후 이를 왜놈 잔재라고, 성난 군중들이 건천학교 운동장 동편에 있던 왜놈 신사를 때려 부수면서 벚나무들도 베어내고 말았다.

왜놈시절 건천공립국민학교 정문 옆에는 우람한 ‘히말리야시다나무’가, 교장 사택 앞에는 ‘벽오동’나무가 있어, 가을이면 팔매질로 벽오동 열매를 따서 구워먹으면 참 고소했다. 그리고 건천학교 교정에는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도 있었다.

건천지역은 조선조 초부터 조선말까지도 계속 ‘내서면’이라 부르다가 1914년에 왜놈들에 의해 경주군 서면으로 바뀌었고, 1973년엔 건천읍과 서면(아화)으로 나뉘었다. 건천학교 건너편의 ‘서면 사무소’엔 늙은 추자나무(호두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내서로에서 청도로 갈라지는 3거리엔 금융조합(농협 전신)건물이 있어 지금의 신경주농협까지 이어진다.

조금 남쪽으로 내려가서 공굴(교량)을 건너면 동편에 푹 꺼진 데 초라한 극장이 하나, 좀 더 내려가면 건천시장 입구 길가에 수령 수백 년에 몇 아름드리나 되는 ‘당수나무’가 당당히 서있어 건천의 상징수(象徵樹) 역할을 하였다.

'방랑자' 님이 '커피 한 잔의 여유'라는 '다음 불로그'에 2012.4.2. 올린 '건천 당산나무'지만

누가 언제 어디서 찍은 사진인지는 알지 못한다.

화천대장 님이, 이 사진을 보고 흑백사진은 화천 백석 마을에서 찍었다는 댓글을 달아 주었습니다. 2021.5.3.

 그 나무가 차지했던 얼안만 해도 집 한 채가 들어설 만큼 몇 십 평방미터에 이르렀다. 4번국도(지금 내서로)에서 좀 들어간 자리에 있던 그 상징수가 어느 해 태풍으로 쓰러진 게 안타까워, 2019.2.18. ‘건천사랑’ 카페에 사투리가 ‘흠다리 사과’란 제목으로,

 

‘내가 흠다리 사과를 펼쳐놓고 앉아서 팔았던 건천 시장 입구의 그 수백 년 된 늙은 당수나무는 건천의 상징이었는데, 어느 해 태풍에 쓰러진 모양이라 그루터기마저 말끔히 치워버렸나 본데, 지나면서 언뜻 보니까 그 나무가 섰던 자리가 휑뎅그렁하여 보기에 참 민망하던데 누가 거기 느티나무 묘목 한 그루를 갖다 심어주면 참 좋으련만…….’

이란 글을 오렸더니 신경주농협 조합장(김병철)님께서 즉각,

‘당수나무 대신에 손자벌인 회나무를 심어놨습니다. 재법 많이 컸습니다. 고향 방문하시면 꼭 들러봐 주십시오. ^*^~ 라는 댓글을 달아 주었다.

 

아래의 첫 번째 사진은 ‘건천사랑’ 카페지기인 자생꽃(박열철) 님이 2021년 4월에 찍어 카페에 올린 것이고, 그 다음 사진은 ‘다음 지도 로드뷰’에서 찾은 것인데 2009년 4월 초에 찍은 것이다. 사진만으로 볼 때, 쓰러진 할아버지 나무를 대신할 손자나무는 아마도 21세기 초에 심은 게 아닌가 짐작해 보지만, 심은 날자가 언젠지는 알지 못한다.

현재 건천 당수나무의 손자나무는 경주시 건천읍 내서로 1129 대로변에 선 가로수 중의 하 나이며, ‘건천시장’ 버스 정류장과 수정약국의 코앞에 위치한다.

2021년 4월 24일 자생꽃 님이 찍은 손자나무, 수정약국 2층은 병원이다.

2009년 4월 초에 찍은, 당수나무의 손자나무는 매우 가느다랗다.

수정약국 2층에는 노래연습장이 있었다.

 

옛날에 서 있던 그 큰 당수나무의 수종은 포구나무(팽나무)였는데, 사라진 포구나무 대신 2000년대 초에 심어진 손자나무의 수종은 귀목나무(느티나무)다.

사투리가 바랐던 나무가 느티나무였고, 조합장이 심었다는 나무가 회나무인 줄 알았는데, 지금 자라고 있는 나무는 회나무가 아닌 느티나무라 어쩌면 무엇인가 통한 느낌이다.

손자나무 옆에는 ‘고목 다방’이란 간판조차 보인다. 사라진 당수나무를 기리는 듯.

2021년 4월 현재, 느티나무의 밑동이 아주 많이 통통하게 굵어져 있음을 본다.

 

2021년 4월 25일 김경숙 님이 찍어 보내준 느티나무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