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미치광이
결국엔 미치광이
그리하여 마음에 얻은 병이 골수에 사무쳐 나는 살짝궁 미치고 말았다. 강의만 듣고 필기도 하지 않는 경주공고 화학과의 수재 김한덕 군, 토목과의 배춘식 군, 그리고 날고 기는 부류의 강홍중, 안태모 등등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경주공고에는 많을뿐더러, 걔네들은 저희끼리 모여서 스터디 그룹도 만들어 공부하곤 했는데, 그들을 보란 듯이 제치고 외톨이로 특대생이 된 내가 대학교 입학시험은커녕 원서조차 구하지 못해 재수생이 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린가 말이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 억울한 사정을 어디다 하소연한단 말인가?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속에서 천불이 활활 타올라 도저히 집구석에 붙어 있을 수가 없어 아침밥만 먹으면 산으로 들로 헤매고 다녔다. 머리카락은 몇 달을 깎지 않아 어깨를 덮을 지경이었지만 자주 감아서 더럽지는 아니했다. 처음에는 혼자 돌아다니다가 차츰 머슴들이 땔나무 하러 가는데도 따라가 봤다.
건천에서 걸식하며 살던 대추밭 ‘삼방우’란 미치광이가 있었다. 삼방우는 길을 가다가도 활자가 인쇄된 종잇조각만 보면 주워서는 훑어보는지 읽는지 모르지만 좌우지간 일별한 다음에는 히히히 웃고는 어깨 너머로 던졌다. 그 모습이 꼭 황소가 암소 꽁무니 냄새를 맡고 나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빙긋이 웃는 듯했다. 나는 그 지경까진 이르지 않았던 듯싶다.
세상 사람들은 그가 글을 너무 좋아하다가 미쳤다고들 했다. 사실이야 어찌 됐든 간에 불쌍히 여긴 마을 사람들이, 삼방우를 불러다 간단한 일이나 심부름을 시키고 요깃거리나 입을 옷도 나눠주곤 했는데, 밥부터 먹이고 나서 일을 시킬 참으로 찾아보면 삼방우는 이미 줄행랑을 친 다음이었지만, 일부터 시켜서 그걸 끝마친 다음에 밥을 줄라치면 성실히 맡은 일을 끝내는 아주 현명하달까 대단히 약삭빠른 위인이었다.
하기야 삼방우가 현실에 잘 적응하는 것이겠지. 한 끼 식사가 해결된 다음이라면 굳이 귀찮은 심부름을 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나는 산천을 맹목적으로 마구 헤매기도 뭣하여 다람쥐나 무슨 동물이 움직이는 것을 관찰하면서 한나절을 너끈히 보냈다. 배추밭에서 무당벌레가 진딧물을 잡아먹는 광경이라든지, 얕은 물속에서 자맥질을 하는 물방개나 물땅땅이라든지, 나무 구멍에 둥지를 트는 박새의 움직임 등등. 박새의 둥지는 첨에 지푸라기나 검불 같은 것을 물어들여 지어 가다가 나중에는, 털갈이 할 때 빠져나온 쇠털을 물어다 포근한 밑자리를 깔곤 한다. 모래밭에서는 개미귀신이 엉덩이로 깔때기 모양의 함정을 파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무척 재미있으며, 산골짜기 찬물이 새는 곳에 엎드린 무당개구리를 건드리면 발랑 뒤집어지는데, 그 녀석이 다시 뒤집어질 때까지 빨간 뱃바닥을 구경해도 좋고, 학배기들이 올챙이를 잡아먹는 장면이라든지, 그밖에도 산이나 들에만 나가면 눈여겨볼 만한 것들이 수두룩 빽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