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진 내 인생, 노래에 꺾여저 나옵니다
굴곡진 내 인생, 노래에 꺾어져 나옵니다
조선일보 신동흔 기자
입력 2020.03.10 03:00
[제2의 전성기 맞은 가수 진성 '미스터트롯' 마스터로 주목받아]
부모 떠난 뒤 시골 장터 떠돌며 자라
무명 땐 음반 1000만장 팔렸어도 빈손
트로트에 필요한 건 인생의 깊이… 소리 지르기보다 삶을 들려줘야
가수 진성(60·본명 진성철)은 요즘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최고 시청률 33.8%(닐슨코리아·5일 방송분)를 찍은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 마스터(심사위원)로 고정 출연하며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알렸고, 최근 한 지상파 방송이 신설한 트로트 프로그램에도 나오면서 부쩍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태클을 걸지마'(2005) '안동역에서'(2012) '보릿고개'(2015) 등 많은 히트곡에도 '얼굴 없는 가수'로 살아왔던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지난 6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요즘 시간 많다"며 웃었다. 우한 코로나 유행으로 두 달치 공연 행사가 대부분 취소되면서 벌어진 일. "저야 방송도 나오고 해서 버틸 만한데, 행사가 주 수입원인 무명 가수들은 정말 힘들 거예요."
십대부터 시작해 40년 넘게 노래를 불러온 트로트 가수 진성은 최근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올해 환갑인 그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이다. /장련성 기자
무명 가수 설움은 그가 누구보다 잘 안다. 열일곱 살에 시골 장터를 떠도는 극단 생활을 시작해 서울 영등포 극장식 무대에서 눈칫밥 먹으며 가수 인생을 시작했다. 그 스스로 "가수는 됐는데, 성공한 것도 아니고 실패한 것도 아닌 상태가 계속 이어졌다"면서 "필요하면 노점상도 했고 그 덕에 장사 수완도 꽤 좋은 편"이라고 했다. 긴 노총각 생활을 끝낸 것도 불과 10년 전이다.
전북 고창과 부안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자기 몸은 자기가 책임졌다. 세 살짜리 아들을 시골 친척집 전전하는 천덕꾸러기로 버려두고 떠난 부모에 대한 원망은 가슴에 묻었다. 그래서일까, 그가 자작곡 '안동역에서' 가사 중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오지 않는 사람아…"라고 노래할 때 느낌은 확실히 남다르다.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리움은 제 정서의 밑바탕"이라고 했다.
'미스터트롯' 예선에서 소년 출전자 정동원이 '보릿고개'를 부를 때는 마스터석에 앉은 원곡자 진성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장면이 TV 화면에 잡혔다. "배가 고플 때면 무명 홑바지 입고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노래를 불렀어요. 밭에서 일하던 아줌마들이 '잘헌다' 하면서 불러 먹을 것도 챙겨주고 했죠." 그는 "그 노래는 배고픔과 그리움이 주제인데, 그 아이가 뭘 아는 것처럼 노래하니 만감이 교차하더라"고 했다. 그의 히트곡에는 유독 그의 인생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많다. '어떻게 살았냐고 묻지를 마라, 이리저리 살았을 거라 착각도 마라'(태클을 걸지마)고 할 때는 스스로 개척한 인생에 대한 애착과 자부가 느껴진다.
무명 생활에 힘든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그는 '메들리 사대천왕' 중 한 명으로 불렸다. 자가용이 급증하면서 눈만 뜨면 "트로트 메들리 녹음하자"는 제의가 이어졌다. 그는 "그 시절 음반 1000만장은 족히 팔았을 것"이라고 했다. 수입에 별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목소리를 알릴 수 있어 행복했다.
후배 가수들 노래를 많이 듣는 요즘도 기분이 좋다. 하지만 그는 "무조건 세게 부르려고만 하지 말고, 강약(强弱)에 좀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조언도 빠트 리지 않았다. 그는 "아무래도 트로트에 필요한 것은 인생의 깊이"라면서 "그냥 냅다 소리를 지르기보다, 삶의 경험이 응축된 소리를 들려줘야 한다"고 했다. 인생 공부도 그래서 필요하다는 것. 그는 "트로트 저변을 넓혀주는 후배들이 너무 고맙다"면서 "그래도 우리 60~70대 어머니들한테는 제가 BTS(방탄소년단) 아니겠느냐, 언제든 자신 있다"면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