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반나절만 쉬었으면......

사투리76 2019. 3. 20. 00:27

반나절만 쉬었으면...... 

 

나도 사람인데, 애라 이 떠그랄……. 사람을 이토록 무시하다니? 당신 참말로 나한테 그럴 수가 있소?”

하며 멱살이라도 잡고 마구 대들고 싶었으나, ‘차라리 내가 돌이 되자.’ 싶어 가슴을 떨며 꾹 참았다. 속으로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부하를 굶기고도 저토록 무심한 저 인간의 심장은 도무지 어떻게 생겨 먹었을까?

사업 계획서를 정부에서 검토하는 동안, 어떤 때는 연 나흘을 상공부 사무실에서 죽치고 살아야 했다. 정부의 승인서를 받지 않고는 아예 회사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라는 지엄한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공부에서는 또 나름대로,

여기가 당신네 사무실이냐는 식으로 관리들의 심한 힐책을 받고 상공부 복도에 주저 물러앉기도 했었다. 이렇게 일에 흠뻑 빠진 시간이 끝도 없이 이어져, 무려 18개월 동안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하루만 쉬어 봤으면 싶었지만 토요일도 일요일도 없이 강행군만 계속 됐다. 반나절조차 쉬어보지도 못한 채.

그럭저럭 정부의 인가도 받고 원줄거리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어갈 무렵, 내 몸은 파김치처럼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귓속은 윙윙거리는 이명이 지배하고 어질어질하더니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죽고 싶어도 죽을 틈이 없었는데 이젠 고비를 넘겨서 그런지 완전히 소금에 절인 상추 꼴이 되어 갔다. 체중은 막바지에 43킬로그램으로 줄어들어 죽은 사람 입김에도 날아갈 판이었다. 

 

입사 이후 휴가란 걸 가본 적이 있었던가? 휴가 좋아하네! 휴가는커녕 시골에서 행하는 사촌 누이동생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하였다.

사람이 사는 귀천이 뭔데? 기쁜 일에 함께 모여 기뻐하고 슬픈 일에 가족이 함께 모여 슬퍼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큰조카가 참석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보나마나 회사에 대한 과잉충성이지.

인륜은 알아야지 이놈아! 너희 한국화약(지금의 한화/화약 전신) 기획과장 자리가 얼마나 바쁜지 몰라도 이놈아! 네 누이동생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네놈이 무슨 오라비라고……. 그렇게 회사에 목숨 걸고 충성해서 네가 죽고 나면 무슨 비석이라도 하나 세워 준다고 하더냐? 비석은 고사하고 누가 돌아보기나 할 것 같으냐? 에라 이 지지리도 못난 놈! 너 하나 없다고 회사가 안 돌아갈 것 같으냐? 너 하나쯤 없어도 회사는 잘만 돌아간다, 이놈아.” 

 

화가 머리끝까지 나신 어른들은 시골의 누이동생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 나를 집안에서 파문할 정도에 이르렀다. 이것이 도대체 뭐냐? 이렇게 사는 것도 사는 것이냐? 바보같이……. 멍청이같이……. 자아비판이라도 해야 할 막다른 골목으로 쫓겨 들기에 이르렀다. 

 

덕수궁에 가본 것이 언제였더라?

입사 이래 처음으로 휴가를, 그것도 특별휴가를 얻었다. 8주일! 한두 주일도 아닌 무려 두 달간의 특별휴가!

김 과장, 좀 쉬도록 하지, 내가 너무 무심했나봐. 주말도 휴일도 없이 너무 무리를 시킨 것 같군. 어디 산이든 바다든, 자네 마음 내키는 대로 가서 회사일 다 잊고 푹 쉬었다 오게. 완전히 건강을 회복한 뒤에 돌아와.”

현암 회장님께서 내리신 봉투를 쥐어주시는 직속 상사(위에 말한 상사가 아님)의 손을 잡자 뜨거운 무엇이 주르륵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40년 전에는 콧노래를 부르며 함박눈이 내리는 인천 들판을 걸었다.

꿈과 희망과 더불어 허탈과 좌절도 겪었고, 또다시 용기를 내며 지나온 세월. 아흔 아홉 굽이도 넘는 고갯길을 굽돌아 오는 동안, 이제는 평범한 장년이 되고 말았나 보다. 귀밑에는 어느새 흰 서리가 하얗게 앉았고……. 구름에 달 가듯이 세월이 흘렀나 보다. 일복 많고 집념 강한 어느 토목 기사의 얘기였던가

열두 냥짜리 인생의 주제곡 후렴이 아직도 내 귓전을 맴돈다.

엥헤이 엥헤야, 엥헤이 엥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