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부잣집 자식 2

사투리76 2019. 2. 11. 02:13

부잣집 자식

 

  어린 우리들 보고는 풀을 뜯어오라고 해서, 학교나 건물의 하얀 벽에 그 풀을 으깨어서 위장색을 칠하게 했고, 무슨 소린지 모르지만 미군의 B-29가 폭격을 해 오니까 개이까이개이호, 구우슈개이호(경계경보, 공습경보)’라고 해서 도로변 하수구에 가서 눈과 귀를 동시에 가리고 엎드리는 연습도 숱하게 했다. 집에서는 공출이라고 곡식이란 곡식은 모조리 들추어 영장도 없이 강제로 가져갔다. 농민들이 더러는 부엌 바닥이나 여기저기 쌀을 감춰놓았지만 일본 놈 앞잡이가 있어 귀신같이도 찾아내 가져갔다. 그뿐인가? 놋쇠란 놋쇠도 공출로 바치고 집에 있던 제기(祭器)는 물론 심지어 놋숟가락까지 걷어갔고, 마당에 노는 강아지도 군인들의 겨울신발 만드는 털가죽으로 쓴다며 잡아갔다. 그 바람에 경주에 흔하던 꼬리 없는 개 동경이나 땅에 배가 붙은 듯한 땅개도 씨가 말라버렸다.

 

  왜 반항 한 번 못해 봤느냐고? 칼 찬 일본 순사 앞에 항의를 하거나

반항했다간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인데? 그놈들이 공연히 칼을 차고 다녔을까? 순사들만 칼을 찬 게 아니고, 초등학교 교장이란 왜놈도 칼을 찼다.


  그때는 집안 구석구석에 신()들이 있었다. 부엌에는 조왕신, 변소엔 측간귀신, 집 지키는 성주 귀신, 안방에는 신주단지, 나무에는 목신, 산에는 산신, 흙에는 토신, 아기를 점지해 주는 삼신 등등 온 집안에 백여 가지가 넘는 신들이 존재하고, 거기에다 대고 때마다 빌고 가을이면 집집마다 안택굿을 했다. 일본놈들은 그런 잡신들을 철 따라 빠짐없이 다 섬기며 사는 미신이나 믿는 족속이 무슨 인간이냐? 미개종이지, 말 잘 안 듣는 놈은 몇 놈 잡아간들 어떠하며 필요한 것들 좀 뺏어간들 뭐가 어떠냐는 식이었다. 일본 놈들은 서슬이 시퍼랬으며 죄책감 같은 건 아예 없었고 언제나 당당했다.

 

  해방되던 그날 월천 어른은 품산제(品山堤) 못에서 저수지를 막는데 부역하러 갔고, 학술 숙부님은 일본 요코스카에서 레이다 병으로 있다가 해방을 맞았다. 내가 해방과 관련하여 기억하는 것은 집집마다에 있던 일장기에다 먹으로 태극의 반쪽 아래를 거멓게 칠한 다음 4괘를 그려 넣어 태극기를 만들어 흔들던 것이었다.

 

  며칠 뒤 건천엘 갔더니, 건천학교 운동장 동편에 있던 왜놈 신사(神社)가 파괴되었고, 건천학교와 우편국 사이에 심어졌던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모조리 베어졌으며, 기차역 승강장에 있던 조그만 바깥 대기실이 부서지고 없었다. 해방된 기쁨에 넘친 사람들이 왜놈들의 상징인 신사를 부수고 벚나무 가로수도 몽땅 베어버렸으며 승강장 대기실도 부숴버린 모양이었다. 기차간에 있던 의자의 초록색 융단은 사람들이 칼로 오려가 버려서 대패질도 하지 아니한 험악한 나무의자의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내가 워낙 어려서 해방이 뭔지도 모르고 지나갔지만 숙부님이 일본에서 돌아온다는 소리는 반가웠다. 매일처럼 정화수를 떠놓고 일편단심으로 기도를 드리던 어머님이 안쓰러워 보였는데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