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사라호 태풍

사투리76 2019. 2. 28. 01:40

대학 생활과 취직

 

 

사라호 태풍

 

 

  대학교 1학년 추석 때인 19599월 한반도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태풍이 사라호다. 중심부근 최대풍속 초속 85미터, 평균 초속은 45미터, 최저 기압은 952 hPa을 기록하여, 그 당시의 기상관측 이래 가장 낮은 최저 기압이었다. 장승마을 집에서 추석 차례를 지내다 말고 마당에 물이 차오르는 바람에 우리 식구들 모두가 정신이 홀라당 나갔다.

 

 

  비는 마구 쏟아지는데 나는 놋날 같은 비를 맞으며 완전히 벌거벗고 수영복 하나만 걸친 채 지게에 중요 가재도구를 싣고 마을의 높은 지대인 도로 쪽으로 옮겨야만 했다.

 

 

  장승 마을의 우리 집은 소산(니노지 산)에서 내려오는 종강거랑(종강개울)이 운반해 온 토사가 퇴적된 삼각주의 끝자락에 놓여 있는 동시, 큰개울 물과 직각으로 만나는 종강거랑 물의 세찬 기운 탓에 큰개울 물이 우리 집으로 파고들지 못하는 역할을 하여 집이 떠내려가는 변을 막아 주고 있었다. 다만 단시간에 퍼붓는 엄청난 양의 폭우는 빠져나갈 곳이 없게 되자, 강이 순식간에 범람하고 수위도 갑자기 높아져서 집 앞의 새들의 벼가 완전히 잠기더니 물이 우리 마당도 채우고 끝내 축담까지 차올랐다. 부모님도 이런 홍수는 처음 겪는 일이었을 뿐더러 굼밭의 이모님 댁에서는 장독들이 마당에 둥둥 떠다니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태풍이 지나간 하루 뒤에 하늘은 개이고 마당에 차올랐던 물도 차츰 빠져나가 부산에 있던 학교로 가긴 가야 했지만 교량이 끊겨 차들이 제대로 다니지 못하였다. 차량이 다닐 수 있는 구간은 남의 트럭도 얻어 타고 교량이 파괴된 구간은 걷기를 반복하며 하루 종일 걷기도 하고 타기도 하며 어찌어찌 부산까지 가긴 갔는데, 저녁에 자려니까 열이 펄펄 오른 다리가 몹시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심한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마구 긁었더니 다리에 피딱지가 수없이 앉았다. 아이고 무서워라. 태풍! 그런 태풍을 내 평생에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다.

 

 

  새로 짓는 장승동 집은 옛날 홍수 때의 수위를 감안해서 토대를 높였다니 축담까지 물이 차는 일은 없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