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어머니 월천댁 안어른 1

사투리76 2019. 2. 7. 00:57

 

어머니 월천댁 안어른 1

 

 

  어머니 월천댁 안어른은 어린 시절 계모에게 학대당한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계모는 자신이 데려온 다 큰 딸들은 핑핑 놀리는 대신, 전처의 자식들에게만 일을 시켜, “많은 미영을 잦으먼 자부럽어여, 자부럽어여, 몸서리나기 자부럽어여, 사알 굶고 하리 자라커머 사알 굶겟더라<(물레로) 많은 목화를 자으면 졸려서, 졸려서, 몸서리나게 졸려서, 사흘을 굶고 하루를 자라고 하면 사흘을 굶겠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잠이 모자라서, “잠이 밀리가아, 미수잠이 밀리가아, 저넉 숟가락만 띠고 방아 드가머 버러 자분다<잠이 밀려서, 밀린 잠이 밀려서, 저녁 숟가락만 떼고 (설거지하고) 방에만 들어가면 벌써 존다.>”고도 하였다. 계모는 전처의 코흘리개 아들(6살 정도 됐을 때의 경오)에게도 땔나무를 해 오라고 시켜서, 놀러왔던 친척이 대신 나무를 해 준 적도 있다고 한다.

  계모가 월천댁에게는 날마다 죽을 많이 쑤라고 명하여, 죽을 한 버치씩 쑤어서 저녁에도 먹고 아침까지도 계속 먹으면, 사정을 모르는 외조부인 석순 어른은,

얘야 너는 무슨 죽을, 한 끼에 먹고 치우지, 죽을 왜 그렇게 많이 쑤느냐? 얼마나 쑤었기에 아침까지도 죽을 먹느냐고 하면 계모가 그렇게 시켜서라는 소리를 차마 하지 못하였는데, 계모가 널름 받아서 그년의 가시나는 손목쟁이가<그 계집애는 손이> 커 가지고서, 안 그렇소하고 자기가 시킨 것을 오히려 덮어씌우기 일쑤였다고 한다.

 

 

  넉넉지 않는 살림에 할 일은 너무도 많아 손톱만 한 시간 여유도 없었다. 월천댁은 머리를 한번 제대로 감고 빗을 틈조차 없었다. 월천댁의 계모는 자기 친정을 하늘 같이 떠받들면서도, 전처 자식에 대해서는 그렇게 모질게 굴더란다. 심술도, 심술도 그런 심술이 없었다고 한다.

 

 

  외조부는 산내에 살면서 큰딸(태주)을 양동댁 맏며느리로 시집보냈는데, 나주 임 씨 할머니가 외조부댁에 갔다가 처녀 적의 어머니(와주)를 보고 장히 맘에 들어 굳이 며느리로 삼겠다고 욕심을 내어, 어머니(월천댁)가 장승동 김해김씨 집으로 18살에 시집을 오게 되었다.

 

 

  어릴 때 계모한테 받은 지독한 스트레스 때문에 월천댁은 항상 불안에 싸여서 평생을 보낸 셈이다. 어느 것 하나도 긍정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항상 부정적인 것부터 먼저 상정하고, 모든 말을 에둘러 하는 등 특이한 현상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