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형 학장 1
오기형 학장 1
그런 어수선하고 음산한 바람이 부산연세대학 학장인 오기형 교수에게도 몰려갔다. 어디서 어떤 작자가 왜 시작했는지 알지 못하는 사이, 학생들 사이에서 오기형 학장은 물러나야만 한다는 식으로 여론이 돌아, 자초지종이나 사실 여부를 따질 겨를 없이 삽시간에 ‘저 사람은 쫓아내야 한다’는 식으로 ‘오기형 물러가라’가 기정사실화 되고 말았다. 나는 오기형 학장의 비리를 하나도 알지 못했고 그 당위성조차 모르면서도 학생회 대의원이라는 것 때문에 거기 동조하고 있었다. 그렇게 웅성웅성하는 사이 ‘연판장’이라는 것이 온 교정을 휘덮으면서 백지에 학생들이 각자 이름을 쓰고 지장을 찍는 식으로 연판장이 활개를 쳐서 어느 누구도 그 회오리바람을 잠재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으니,
누가 불을 질렀는지도 모른 채 거대하고 세찬 바람이 희한하게 불고 있었는데, 결국은 조직을 갖춘 학생회가 그 짐을 떠맡게 되고 말았다. 군중심리란 것이 휘몰아치기 시작하니 논리도 없고 뭐도 없이 그냥 인민재판식으로 마구 밀어붙이는 것이었다.
부산 연세대학에는 단과대학으로 문과, 상과, 정법과, 이공과, 가정과 등이 있었는데 그 대의원이 누군지 문과는 잊어버렸고, 상과 최현수, 정법과 김연수, 이공과 김주석, 가정과 이경자, 임길자 등 각과에서 한두 명씩 모여 서울 본교로 백낙준 총장을 찾아가서 담판을 짓기로 결정이 났다. 대학 2학년짜리인 애송이 학생들이 총장과 담판을 지어? 가소롭기 짝이 없는 일인데도 무모한 우리 대의원들은 서울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내가 그 연판장 원본 뭉텅이를 들고 가서 총장에게 보여드리는 책임을 맡았다. 부산에서 아침에 떠난 기차는 서울 역에 저녁에 도착했다. 아마 8~9시 경이었지 싶은데 이화여대 앞에서 총장이 보냈다는 랜드로버라는 승용차를 타고 연세대학교 숲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총장 사택에 도착해서 거실로 들어갔더니 살짝 얽은 곰보에다 거구인 백낙준 총장이 거실에 설치된 영사기로 영화를 감상하고 있다가 부랴부랴 그걸 치우느라 부산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