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오리 사육 1

사투리76 2019. 2. 16. 07:44

오리 사육 1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기 전의 1950년대 중반에도 정부에서 농촌 부흥을 위해 여러 가지 애를 많이 썼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 중의 하나가 오리사육이었는데, 면사무소에서 오리사육을 권장하면서 무상인지 유상인지는 잊어버렸지만 새끼오리 50마리를 분양해 주었다. 오리사육에 대해선 아무런 지식도 없었고 또 사전에 아무런 교육조차 없었으니 그냥 집에서 병아리 기르듯이 기르면 되는 줄 알았기에 월천 어른은 어느 날 새끼오리들을 덜렁 데려왔다. 그걸 본 나는 꿈에 부풀었다. 저것들을 집 앞의 도랑으로 몰아 큰 개울로 나가면 거기 먹을 것이 지천이니 하루 두어 번씩만 데리고 나갔다 와도 먹이 걱정은 크게 덜 수가 있을 것이고, 차츰 자라서 저것들을 팔게 되면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랫방에 가두리를 만들어 놓고 모이를 주며 키웠는데 어떻게나 시끄럽게 삑삑거리며 우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저걸 키우면 부자가 될 것이라 생각해서 참고 견뎠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렇게 하룻밤을 지나자 영문도 모른 채 여러 마리가 아침에는 움직이질 않았다. 죽은 것들은 들어내서 거름 터에 묻어줬다. 또 하룻밤을 지나자 어제보다 더 많은 녀석들이 황천으로 갔다. 도무지 뭐가 원인인지도 모른 채 3일을 지나자 거의 다 저승으로 가버렸다. 추워서 그런가 싶어 방구들에 불을 많이 때어줬는데도 별무 효과였다. 그로써 내 부자가 될 꿈같은 것도 하루아침에 시들어버렸다. 뭐가 뭔지 영문도 모른 채 나흘 만에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다 떠나버렸다.

 

 

   마을의 다른 집에서 오리알을 어미닭에게 안겨서 깐 것들은 잘도 자라던데, 전기 부화기에서 깬 오리새끼들은 추위에도 약할 뿐더러 사료에도 문제가 있지 않았나 싶은데, 결국은 하등의 사전 교육도 없이 덜렁 새끼오리를 데려온 데서부터 사단이 생겼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