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용, 하늘을 나는 기분
자가용, 하늘을 나는 기분
그때만 해도 운전기사가 딸린 자가용차를 타고 출퇴근한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었고, 매우 드물었으니 그건 마치 조선시대 경마잡이가 딸린 말을 타고 행차하는 정도의 대우여서 나로서는 입이 바소쿠리만큼 벌어져서 다물 수가 없었다.
회사가 나를 대우해 주고, 꿈에도 보기 싫던 그 차차상급자와도 완전히 결별하고 새로운 조직의 새로운 천지에 발을 내딛고 보니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아 살맛이 철철 나는 것이었다. 그건 냅다 고함을 지르고 싶을 만큼 좋고도 또 좋은 그런 기분이었다. 날개가 없달 뿐 하늘까지라도 훨훨 날고 싶기까지 했다.
경상도의 어느 이름 모를 두메마을 출신인데다가 사투리를 진하게 쓴다고 모진 구박과 천대를 받으면서, 살고 있는 집이란 것조차도 사당동의 현대건설 채석장 옆의 하늘 아래 일번지인 산꼭대기 위치에, 하꼬방(판잣집)을 겨우 면한 형편이라, 계단을 적잖게 딛고 올라가야 하는 축대 위에, 상수도도 없이 전기도 한동안 도둑 전기를 끌어다 쓴 그런 집에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아침부터 갑자기, 그 귀하디귀하고 윤기 나는 자가용 승용차가 저만치 도로에 와 닿아서 기다리다가, 운전기사가 날 위해 문을 척 열어주는 광경이 상상이나 갈 법한 일인가 말이다.
그게 나에겐 ‘소확행’ 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하나였다. 여기서 촌놈으로 차별받고 사는 것이, 차라리 호주로 이민 가서 인종 차별 받고 사는 것보다는 견디기가 쉬울 것 아닌가 말이다.
낯설고 물 선 호주에 가서 뿌리를 내리고 사름하려면 그 외로움과 고충은 또 얼마나 눈물을 짜내는 일이겠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