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출생에서 어린 시절 1

사투리76 2019. 2. 9. 00:48

출생에서 어린 시절 1

 

 

어머니는 18살에 시집 와서 22살에야 나를 낳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한국식으로 5년 만에 애를 낳은 셈이다. 학서 어른의 입장에서는 손자를 무척이나 기다린 폭이다. 보통은 젊은이가 결혼하면 금방 잉태하고, 일 년 뒤 시집에 올 때는 아기와 함께 가마를 타고 오는 것이 관례였는데,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나도 태기가 없으니 온 식구들의 근심이 가득했음 직하다. 그래서 부모님께서 오봉산에 있는 주사암(朱砂庵)에 가서 지극정성으로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절에 갈 때는 목욕재계하고 동메걸에 가서 황토 흙을 파다가 사립 앞에 30센티 간격으로 크게 한 삽씩 양쪽에 줄지어 쏟아 놓고 사립에는 왼새끼로 꼰 금줄에 솔가지를 달아 외부인의 출입을 1주일 전부터 금하며, 마음을 정갈하게 먹고, 초상난 집에 문상도 가지 않으며, 상주와 길에서 만나면 외면을 하고 부부가 잠자리를 같이하지도 않는 등 대단한 정성을 쏟았다.

 

 

불공을 드려서 그런지, 마침 태기가 있어 햇수로 2, 달수로는 열 달이 아닌 무려 14개월 만인 무인(1938)년 동짓달 초하룻날(음력) 자시에 아기가 태어났단다. 그때는 음력을 쓰던 시절이었고 비록 초하루라도 동짓달을 한 달로 치는 계산법이니 시작도 아마 그믐날일지라도 한 달로 치는 식이었지 싶지만 어쨌든 음력식 계산법이라도 14개월은 너무 오래다. 내가 어려서는 잔병치레가 많았다고 한다.

 

 

어렸을 적에 모심기를 하러 가서, “너는 요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 하면 몇 시간이고 그 자리에서만 뱅뱅 도는 매우 말 잘 듣는 아이였단다.

저녁을 먹고 나서 나는 잔다.” 하기 바쁘게 금방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 나라는 인간은 매우 융통성이 없는 아이였던 것 같다. 어른이 시키는 말은 한 번도 거역해 본 적 없으니까. 내 기본 성질이 거역을 못하는 일면도 있겠지만, 한마디라도 거역을 했다간 당장 앞개울에 처박는 월천 어른의 불같은 성질이 나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월천 어른의 성질은 너무도 불같아서 나로서는 도저히 그 앞에서 어떤 반기도 들 수가 없었다. 아마도 어린 내가 무슨 몹쓸 투정을 부렸거나 심한 반항을 했겠지 싶긴 한데, 월천 어른은 가끔 나를 개울물에 거꾸로 처박곤 했다. 물에 잠겨 코로 물이 들어오면 코 속이 금방 찡 해지면서 숨이 콱 막히는데, 거기서 숨을 쉬려고 발버둥을 치다 보면 자연스레 물을 먹게 되어 한 서너 모금쯤이야 금방 들이마시게 되고, 그때 귓구멍을 파고드는 물소리가 꼬로록 하는가 싶다가 금방 멍멍해지는데 그때부터 정신조차 몽롱해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