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한화에서 30년

사투리76 2019. 3. 17. 00:08

한화에서 30년


열두 냥짜리 인생

- 월간 <다이나마이트> 백일장 수상 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의 일들이 세상사는 이야기다. 대체로 인기가 좋은 라디오 연속극이나 TV 드라마를 볼라치면 서민들의 평범한 생활의 애환 이야기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는 성싶다.

 

 

좀 오래된 얘기지만, 60년대는 나일론의 시대였다. 처음 나온 나일론양말은 해져서 못 신는다는 법이 없었다. 바가지도 나일론 바가지로, 장판도 나일론 장판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화투까지도 나일론 뻥이란 것이 생겨났고, 꾀병을 앓는 환자도 나일론 환자라 불렀다. 좀 색다른 것에는 으레 나일론이란 접두사가 붙었다.


이 나일론이 차츰 나쁜 뜻으로 변질돼 갈 때, 나일론스럽지 않은 사내가 등장했다. 그 사내의 이름은 물론, 얘기의 줄거리도 기억에 어슴푸레하지만 열두 냥짜리 인생이라는 라디오 연속극의 주인공이 바로 그다(그때는 TV가 참으로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그 사내는 험한 토목공사판에 뛰어들어, 힘깨나 쓴다는 장정들과 심한 입씨름으로 맞서기도 했으나, 자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어떤 어려움도 밀고 나갔다. 때로는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어여쁜 아가씨와 사랑을 속삭이기도 하는, 끈질기고 일복 많은 사내였다.

 

 

어쩐지 나는 그 사내가 좋았다. 평범하고 소탈하고 뚝심 있는 사내의 냄새를 풍겨서 그가 좋았는지, 아니면,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다하던 민요풍의 흥겨운 주제가 가락에 더 매혹되었는지 모른다. 그 시절 열두 냥짜리 인생이란 라디오 방송극의 인기는 분명히 대단했다고 믿어진다.

 

 

한국화약(지금 한화의 전신)은 그때, 앞으로 국가 사회에 기여함은 물론, 수익성 있는 성장 사업을 찾고 있었다. 화학공업과 기계공업까지 무척 많은 사업에 대해 시장조사를 했다. 업무 지시는 가을날 알밤처럼 떨어졌다.

시멘트 수급 현황과 전망을 월말까지 조사 보고할 사.”

합판의 수출 전망과 경제성을 내주 중으로 보고 요망.”

이렇듯 시간은 딱 지정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먼저 통계자료를 입수해야 되나, ‘수급통계 실적이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상투적인 대답이었다. 상공부, 경제기획원, 산업은행 등 자료가 있을 만한 곳은 비지땀을 흘리며 돌아다녔으며, 관련 협회는 물론, 한국은행, 무역협회까지 뒤져도 대답은 한결같았다.


 기초자료가 있어야 다음 업무를 진행할 수 있으련만, 난 참으로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어쩌다 안면이 있는 얼굴만 보이면, “형님!”하며 붙잡고 매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