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할머니 나주 임 씨

사투리76 2019. 2. 6. 00:58

할머니 나주 임 씨 

 

  할머니 나주 임 씨는, 1889(기축)년 음력 4월 1일 지금의 포항시 송라면에서 아버지 임사진(林四辰) 씨의 장녀로 태어났으며, 성격이 깔끔하고 사리판단에 조리가 있었는데, 1934(갑술)년 음력 8월 12일 장승동에서 46세를 일기로 세상을 일찍 떠났다. 나주 임 씨가 결혼 후 얼마 동안은 진해에서 생활한 적도 있었으나 맏동서인 나주 정 씨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 서로 잔인정은 없었으며, 1910년대에 장승동으로 옮겨와서 살았다. 별세하기 전에 양자인 월천 어른에게 이르기를,
“내가 죽거든 제사상에 여러 가지 음식을 차리려고 하지 말고, 차라리 소고기 육회나 한 접시 올려놓으라.”고 하였단다. 

 

  학서 어른은 할머니를 영천 장에서 만났다. 울진군 기성면 망양리에는 나주 임 씨의 친정 후대 식구로 임응섭, 무섭이 형제들이 살고 있다. 임춘자는 무섭의 누나이고, 임상섭은 그의 사촌이다.

 

나주 임 씨는 아들 동춘(東春)과 딸 난이(蘭伊)를 데리고 장승동에 와서 살다가 동춘이 6~7세 되던 때 영천 소전거리에서 전 남편에게 돌려보냈다. 그 뒤 동춘은 함경도에서 도자기 기술을 배우기도 하고 일본등지를 거쳐 나중에 부산에 정착하여 자수성가하고 행자와 현이의 두 딸을 두었다. 

 

  동춘의 여동생인 ‘난이’는 월천 어른보다 한 살 위인데, 장승동에서 자라 19살 때, 철도국에 다니며 경주시 광명 골안 마을에 살던 김윤성(金閏成)에게 출가하여 나중에는 안동 일직에서 살았는데, 김윤성은 안동철도국 선로수장을 지냈다.
난이가 ‘안동 고모’이며 김동식, 동화, 경자, 동수, 정웅, 화자, 정자, 동조의 어머니이다.
할머니 나주 임 씨의 사진은 남은 것이 없다. 대신 김동춘 어른과 안동 고모님의 용모에서 최대공약수를 찾아 미루어 짐작해 본 우리 할머니의 초상은 옆의 사진처럼 대단히 후덕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