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효도관광 크루즈 호강 3

사투리76 2019. 2. 2. 00:54

효도관광 크루즈 호강 3

 

 

  자기가 겪었던 얘기인데, 전혀 자랑처럼 들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꾸민 얘기도 아닌 것을 듣는 사람이 흥미롭게 잘도 풀어 나가는 솜씨가 여간이 아니다. 화공약품 장사를 하면서 어떤 소주 회사 사장을 딱 3번 만났는데, 아무 조건 없이 자네가 해보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묻더란다. “화공약품 무역이라.”고 했더니 돈이 얼마나 필요하냐고 다시 물어 요새 돈으로

  한 5억 원쯤 필요하다.”고 하니까, “사흘 후에 오라.”고 하기에 찾아갔더니, 현금 5억 원을 주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해 보라, 밀어 주겠다.” 하더란다. 그때 문득 이 돈을 1년 후에 갚겠습니다.” 하곤 화공약품 수입을 시작했는데, 첫 번째 수입 시 부두 하역 인부들에게 팁을 주지 않았더니, 화물을 마구 집어던져서 포장이 찢어지는 불상사가 생겼지만, 1960년대였으니 포장이 찢어져도 밑지지는 않더란다. 그렇게 돈이 붙기 시작하니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호황을 누렸단다. 지금도 그렇지만, 20대 때도 활달하고 유쾌하고 신뢰할 수 있는 람이었던가 보다. 어찌 3번 만난 청년에게 그리 큰돈을 덥석 맡길 수가 있으랴!

  그러는 중 장사에 이력이 붙어 어느 날 코오롱과 연결이 되었고, 코오롱에서 비단이 처음 생산됐을 때, 그 총판을 맡게 되었는데, 그 시절 경제도 활발하지 않던 때라 그걸 팔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상류계층 사람들이 드나드는 종로의 유명 요정인 오진암을 공략할 생각이 떠오르더란다. 왕 마담을 찾아가서 기생들에게 비단옷 한 벌씩을 공짜로 선사하겠다고 제안했으니, 왕 마담이 그걸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으랴! 오진암의 모든 기생들에게 코오롱에서 짠 비단옷이 입혀졌고 반응은 예상대로 폭발적으로 나타났다. 그 후 한 달 안에 서울 장안에서 유명한 요정의 기생들이 모조리 코오롱 비단옷을 입기 시작했으며, 유행이란 무서운 것이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의 손꼽는 요정 기생들이 코오롱 비단옷을 입게 되었음은 물론, 상류층 여염의 부인들까지 코오롱 비단 옷을 입게 되어 비단 총판은 호황을 이루었다.

 

 

  돈을 좀 만진다는 소문이 돌자, 친척을 비롯해 동창생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찾아와서 손을 벌리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어 1천만 원을 빌려달라는 사람이 오면 아예 3백만 원쯤 줘버린단다. 그렇게 3번만 주고 나면 다시는 손을 더 벌리는 법이 없어지더라고 했다.

  내가 닷새마다 서는 건천 장날이면 술을 마시고 그렇지 않는 날엔 술을 마시지 않는다니까, 그것도 좋은 생각이라면서 자기도 따라 해 보겠단다. 자기는 맥주나 정종을 좋아하지 소주는 별로라면서, 오사카 시내에 상륙하면 일본 청주를 사러 가잔다. 일본에서는 술 가게에 소주만 흔하지 청주는 없더란다. 오사카에 상륙한 날, 어찌어찌 다이마루 백화점을 찾아갔는데, 순전히 청주를 사기 위해 거기까지 갔던 것이다. 맥주병만 한 청주 4병과 안주 몇 가지를 사고 만 엔짜리를 내자 거스름돈 3천 엔은 여자가 부수입이라면서 챙겼는데, 그 돈으로 군것질감을 사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는 인심이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