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03.15 부산 2

사투리76 2019. 2. 25. 01:10

 

 

  내가 학교에서 잘 놀고 잘 설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수업시간에 더러 도망도 가서 남의 집 부엌에 엎드려 피울 줄 모르는 담배도 뻐끔거려 보고 술이라도 먹고, 미운 놈이라도 한 대 때려 보고 1,2학년 학생들이 상급생에게 경례하지 않는 놈들을 잡아다 혼도 내 주고, 그 유행이던 랍바(홀대) 바지를 입고서 연애도 걸어보고, 조회 때 달아나 보고 복장도 군복을 물들인 것을 입고, 헌병을 피해 도망도 쳐 보고, 공납금 받아다 단팥빵도 사먹고, 선생 몰래 극장에도 다니고, 친구들과 사진이라도 찍는 등 모든 하지 말라는 일을 범해 봐야 젊은이의 기분이 생기겠는데, 학교에 갔다 오면 책이나 보던 내가 오늘 이러한 결정을 내게 되었다. 내 인생이 불쌍하기 짝이 없다. 아직 소년이니 지금부터라도 그리늦지 않으니 그 시절에 하지 못한 일들을 하는 것이 좋을까? 그것도 아니다. 나는 아직 내 앞에 대학이라는 두 개의 글자가 나를 부르고 있다.

 

 

  내가 그의 품속에 들지 않는 한 나는 모든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옛날처럼 집구석에 처박혀서 책과 씨름을 해야 하나? 또는 어디로 나가야 하나? 부산? 대구? 서울? 부산으로 가면 밥 얻어먹을 곳은 있고 다른 곳은 밥 얻어먹을 곳도 없다. 내 자신 기어이 서울로 진출해야 할 몸이니 서울로 가야만 하는 것은 틀림없으나 낯설고 물선 그곳 서울, 누구 하나 나를 진심으로 맞아 줄 사람이 있을까? 아니 진심으로 맞아주지 않아도 좋다. ‘응 너 왔니이렇게만 해 줄 사람이 있다면 당장에 그 곳으로 뛰어가고 싶다. 아는 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내가 장차 밟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오 신이시여, 내게 길을 인도해 주옵소서. 내가 답답해야 신을 부르는 사이비 종교인이다. 내 가장 사랑하는 박새도 그 명랑하던 울음소리도 이제는 슬픔의 이별 곡처럼 들릴 뿐,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목소리가 변한 것은 아니련만.

 

 

  지금은 경주 가는 길. 나는 이 글을 24열차를 타고 가면서 쓴다. 1240, 경주역에 정시 도착. 이곳은 2등실. 드디어 건천역에 도착했다. 우선 급한 것이 합격 여부. 아까 부산서도 보긴 보았지만 아무래도 아닌것 같다. 또 한 번 역사무실에서 신문을 들추어 보니 아직도 내 이름은 없다. 집에 오니 밥맛도 없다. 먹는 둥 마는 둥 치우고서, 이모네 집에 가서 작은 톱을 빌려 왔다. 그것으로서 책꽂이를 만들 심산으로.

 

 

  나는 대패질도 잘 할 줄 모르는 놈이라 가뜩이나 잘 드는 것도 아닌데다 기분마저 텁텁하니 잘 될 리가 만무하다. 그래서 대패를 훌훌 미니까 막 터실터실한 게 더 못 볼 지경이라. 그것도 팽개치고 경숙(여동생)이와 함께 짱꼴라(재기)를 찼다. 아버지는 선동댁 집 앞에서 밭을 고친다고 했다. 그래 나의 불합격 비보를 전했더니, 아주 기분이 좋지 못하였고 온 집안 기분이 우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