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점심 먹지 말랬어?

입사하던 해 봄, 미모사처럼 밤이면 잎사귀는 물론 줄기까지 오므리고 잠이 드는 자귀나무 한 그루를, 나는 연구과 화단에다 옮겨 심었다.

6월이면 명주실 다발에 분홍 물을 들인 듯한, 향기 높은 꽃들이 만발하고 제비나비들이 군무를 추는 그 자귀나무가 있는 인천공장에나 한번 다녀올까?

인천 화약공장에선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각종 뇌관과 폭약을 시험하는 폭음을 들어야 했고, 처음엔 더러 놀라기도 했으나, 몇 개월이 지나자 차츰 익숙해졌는데, 그러는 사이 반년쯤 뒤엔 인디언처럼 방바닥을 기어가는 곤충의 발소리를 감지해 낼 수 있음을 알고 스스로 내 귀를 의심하게까지 되었다. 모르는 사이 청각이 극도로 예민해진 것이었다.

이러한 청각의 발달은 악기 조율사 같은 사람이 아니면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작은 소리에 대한 나의 감각은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다.

부질없이 지난 생각에 잠기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용기를 내자. ‘죽은 자식 불알을 만져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큰 시련은 그만큼 큰 교훈을 남기고 떠나갔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자. 우리가 좌절하고 있을 때일수록 남들은 달리고 있을 터인즉. 새 출발을 하여 다시 뛰어보자고 우리는 또 배갈을 마시며 손을 맞잡고 결연히 다짐을 했다.

전열을 정비한 우리는 새 힘과 용기를 뭉쳐, 민간 화력발전소와 정유공장 건설사업 계획 작성에 몰두했다. 마치 시냇가에 연못을 막는 개구쟁이 소년들처럼 업무에만 파고들었다. 정유공장에 대한 집념은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는 응어리였다. 스무남은 가지에 달하는 각종 국·영문 계약서를 작성하고, 협의하고 수정하는 일을 불나게 했다.

글자 한 자, 그렇다! '글자 한 자가 수십 년 뒤에 회사에 미칠지도 모르는 결과를 미리 생각해야 한다' 싶어지자 문득 글자 한 자 때문에 야단맞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것은 참으로 값진 꾸지람이었구나.

“금일 오후 3시까지 정부의 각종 승인절차를 도표로 작성 보고할사.”

사장님께 올릴 보고서인데 시간 내에 끝내려면 점심을 거르는 수밖에 없었다. 배에서는 시장기로 꼬르륵하는 미꾸라지 소리가 요란하고 시간은 2시 55분. 각종 승인절차를 도시한 보고서를 제출하니 또 업무 지시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나 쫌 살리 주이소!’ 하며,

“아직 점심을 먹지 못했습니다만…….”

말꼬리를 흐리는 나에게 금세 되돌아온 말은,

“누가 점심 먹지 말라고 했어?”

라며 목청을 높이는 상사의 매몰찬 질책이었으니, 나는 그만 인간적인 멸시를 느껴 심한 욕지기가 울컥 치밀어왔다.

'어쩌면 저렇게 상사라면서 인정머리도 없을까? 어쩌면 저렇게 부하를 조지기에만 급급하여 밑엣 놈이야 굶든지 말든지 관심 밖일까? 조질 때 조질 값에, 보고서 때문에 굶었다면 하다못해 자장면이라도 한 그릇 시켜 주든지 뭔가 좀 챙겨주는 맛도 있어야지. 아이고, 답답해, 내 팔자야.'

‘제 배가 부르면 종의 배도 부르다’는 옛날 격언처럼 자기 배가 부르니까 남의 배고픈 사정쯤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인가? 나는 지지리 사람 복도 없나 보다. 상사란 작자가 어쩌면 저렇게도 매몰차단 말인가? 모두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노릇인데, 굶기보다 더 서러운 것이 그가 던진 말 한마디였으니

 ‘누가 점심 먹지 말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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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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