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온상 1

회고록 2019. 2. 17. 01:15

실패한 온상(溫床) 1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온상에서 고구마 순을 기르고, 연기로 훈제 고기인 햄을 만들어 보관하는 것들이 나와 있었다. 농부의 아들이어서 그런지 온상과 훈제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은 흔해 빠진 것이 비닐하우스이고 고구마 순이지만, 내가 자랄 때만해도 온상이 있어야만 고구마 순도 기를 수 있었기에 온상을 만들어 육묘(育苗)를 해 보는 것이 내 작은 소원이었다. 감자가 흔하던 시절이라 고구마를 기르면 수익이 있을 듯싶었다.

 

 

   아직 서리가 내리는 3월 초나 중순쯤에 온상을 만드는데, 전기가 없던 시절이어서 열선을 깔 수가 없으니 발효열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깊이 60~90센티 정도 땅을 파고 소가 짚을 밟아놓은 외양간두엄을 잔뜩 넣고 꼭꼭 밟은 다음, 제재소에 가서 사 온 각목을 짜서 들기름 먹인 장판지(그때는 얇은 비닐 필름이란 걸 생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를 발라 온상 뚜껑을 덮어놓고 매일같이 들여다봐도 열이 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외양간두엄이야 소를 기르다보니 우리 집에 흔해 빠진 것이지만 각목과 장판지는 비싼 것인데, 도무지 열이 나질 않으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마당에 있는 두엄더미에서는 김이 술술 잘도 나던데, 내가 만든 온상에서는 왜 열이 나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실패하고 나서 다음 해에는 깊이를 1.5미터 정도 되게 깊이 팠지만 실패했다. 그렇게 두어 해 하고 나니 온상에 대한 열의가 사그라지면서 돼지고기 훈제()에 대해서도 흥미를 잃고 말았다. 싹을 틔워 보겠답시고 사온 고구마는 공연히 흙 속에 심었다가 온상에서 열이 올라오지 않는 바람에 이글거리는 아궁이의 재속에 묻혔다가 그만 꿀길(꿀처럼 먹어 없애는 길이란 뜻의 경주 사투리)로 가고 말았다. 어디 물어볼 사람도 없고, 온상을 만드는 법을 구체적으로 적어놓은 책도 없으니 어찌하랴. 그로써 값비싼 투자의 실험은 끝이 나고 말았지만, 반 평짜리 온상에서는 왜 열이 나지 않았을까? 지금도 그 원인을 알지 못한다. 추측해 보건대 넓이도 크게 잡고 많은 양의 외양간두엄을 넣고 보름이나 그 이상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자체 발효가 되어 천천히 열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싶. 무식하면 당해 낼 재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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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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