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은 두고 내리세요, 빗자루로 싹 쓸어서 종착역에 버릴게요"
조선일보
입력 2019.07.11 03:08
지하철 기관사들 감성방송 화제 "최고의 비타민·피로 해소제"
"오늘 하루 얼마나 힘드셨나요. 힘든 일과 걱정이 있다면 모두 차에 두고 가세요. 빗자루로 쓸어 종착역 저편에 가져다 버리겠습니다."
이달 5일 오후 9시 서울 지하철 사당역에 진입하는 4호선 오이도행 열차 안에서 기관사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이 방송은 '나를 울린 기관사의 한마디'로 명명(命名)돼 인터넷에 퍼졌다. '최고의 비타민·피로해소제다' '타고 싶다 그 지하철' 같은 댓글이 달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상계승무사업소 소속 정훈 기관사. 정씨는 복잡한 출근길 승객들에게 여유를 주문한다. "고개를 들어 맑은 하늘을 잠시 쳐다보면 어떨까요?" 하는 식이다. 매일 아침 7시 30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4호선을 탄다는 대학생 이준영(25)씨는 "정훈 기관사 팬이다.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반가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차가운 기계음뿐이었던 지하철에서 울려 퍼진 기관사들의 인간적인 목소리들이 화제다. 2년 차 기관사 조상원(29)씨도 올해 들어 승객에게 전하고 싶은 당부나 시(詩), 응원의 내용 등을 메모한 원고를 들고 열차에 오른다.
지난달 11일 아침 신촌역으로 진입하는 2호선 열차에서 나온 '3가지 소원' 방송도 계속 회자된다. 기관사는 지난 5월 개봉한 영화 '알라딘'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 첫 번째 소원은 고객 님들의 행복, 두 번째는 안전입니다. 세 번째는 대학생 승객들의 학점이 모두 A+가 되는 것입니다. 3월 개강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기말고사 기간이네요. 3개월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동호대교(3호선), 동작대교(4호선), 청담대교(7호선) 등 지하철이 컴컴한 지하를 벗어나 창밖으로 하늘이 비치는 순간이 이런 '감성 방송'이 자주 나오는 타이밍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