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와 마스크
조선일보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입력 2020.03.10 03:12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서양 사람들은 'Knock on wood!'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뭔가 질러 댄 다음 "제발 부정 타지 않기 바란다"는 뜻으로 나무를 두 차례 두들긴다. 다분히 그런 심정으로 고백하건대, 나는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난 이래 지금까지 마스크를 단 한 장도 사지 않았다. 몇 주 전 처방약 받느라 동네 단골 약국에 들렀는데 약사 선생님이 마스크도 안 쓰고 다니냐며 한 장 준 걸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마스크를 접착제로 얼굴에 붙이지 않는 한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바이러스를 막을 길은 없다. 황사나 미세 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쓰는 것은 나를 보호하기 위함이지만, 바이러스 때문이라면 내가 아니라 남을 위해 마스크를 쓴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공기로는 전파되지 않는다. 그래서 날숨이 닿지 않거나 침이 튀지 않을 간격만 유지하면 대체로 안전하다. 바이러스가 아무리 작아도 중력을 거스를 순 없다. 서로 '사랑의 간격'만 유지하면 된다.
길에서 마주 보며 걸어오는 사람이 갑자기 내 얼굴에 가래를 뱉을 위험을 배제할 순 없지만 길거리에서 마스크를 쓸 이유는 거의 없다. 나는 밀폐된 좁은 공간에 들어갈 때나 남과 가까이 마주 보며 얘기할 때만 잠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끝나면 곧바로 벗어서 봉투에 잘 넣어둔다. 당연히 여러 차례 사용했다. 대신 손은 드라마에서 본 외과 의사처럼 철저히 자주 씻는다.
환자를 상대하는 의료인이거나 좁은 공간에서 장시간 남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사람도 아닌데 마스크를 사려고 동네방네 돌아다니고 오랜 시간 줄을 서는 행위는 결코 현명하지 않다. 얼마 전 어느 기자가 찾아낸 것처럼 바로 뒤에 감염자가 서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여전히 감염자를 찾아내고 치료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정부가 엉뚱하게 마스크 수급에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지 않도록 해주는 게 우리 스스로를 돕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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