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파 먹은 술지게미… 가난해도 따뜻한 60년대”

양지호 기자

입력 2021.02.11 03:00

‘몽당연필은 아직 심심해’ 저자 이종옥씨가 책을 들고 웃고 있다. 그는 일기집에 1960~1970년대 농촌 풍경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아래로는 평생 일기를 써온 그의 1990년대 일기장이 펼쳐져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생일상에 올라온 꽁치 한 마리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 1960~1970년대 유년 시절을 보낸 사람에겐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지금 젊은 세대는 선배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1차 사료가 책으로 나왔다. 이종옥(67)씨가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 입대 전까지인 1963~1975년 일기를 묶어낸 책 ‘몽당연필은 아직 심심해’(글항아리)다.

50년 전 그가 자라났던 충북 괴산 청천면 시골 풍경이 차곡차곡 담겼다. 최근 서울 중구에서 그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1954년 말띠로 태어나, 6·25 전쟁둥이와 그 뒤의 베이비붐 세대 사이에 낀 ‘이름 없는 세대’라고 했다. “우리는 보릿고개와 마이카시대를 거쳐 지금의 풍요를 누리는,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고 행복을 느끼는 세대다.”

책은 “기성회비 좀 주셔유”라고 말하는 국민학교 3학년 이씨의 일기로 시작한다. 이런 일이 다 있었을까 싶을 일화가 이어진다. 친구와 등잔불 켜고 놀다가 헛간을 태워 먹고, 소풍날 집 농사일 돕겠다고 소 풀 먹이러 나왔더니 마침 그곳이 소풍 장소라 산골짜기로 숨어야 했다. 주린 배 채우려 술지게미에 사카린을 타 먹고 취한 채로 학교에 갔다. 생일상에 꽁치 한 마리 올라오는 것이 바람이었다.

그는 ‘선생님 눈 밖에 난 학생’이었다고 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서 강냉이 죽을 얻어먹고, 집안 농사 돕느라 숙제도 못 해가는 날이 많았다. 글솜씨가 없었다면 인정은 못 받았을 것. 국민학교 5학년 때 방학일기로 써 간 일기를 본 담임교사는 대필부터 의심했다. 이씨가 다른 글감으로 글을 써가자 그제야 교육청 글짓기 대회에 학교 대표로 출전시켰다. 새 옷 입고, 새 신 신고 대회장으로 갔다. 난생처음 타본 버스에서 멀미로 토사곽란을 일으키고 졸도했다. 결국 대회에 참가도 못하고 신작로를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돌아온다. 일기는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야반도주해 서울로 올라와 공장에서 일하면서 겪은 일을 세밀화처럼 그려냈다.

 

이종옥씨가 소를 끄는 모습을 그림책 작가 이재연씨가 그린 삽화. /글항아리

그는 “몇몇 빼고서 다 못살았던 시절이라 내 일기 보면 굉장히 어렵게 사는 것 같지만 반 이상은 다 그렇게 살아 열등감은 없었다”고 했다. 중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했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진학을 포기하고 농사를 지어야 했던 그는 이후로도 매일같이 일기를 썼다. 그는 “일기를 쓰지 못하게 했던 헌병대 시절 34개월 10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저녁 먹고 잠들기 전 일기를 한두 줄이라도 썼다”고 했다.

일기는 빛을 보지 못할 뻔했다. 이사하다가 1990년 이전 일기를 모두 분실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1954년생 말띠가 모인 인터넷 카페에 ‘촌놈 일기’라는 제목으로 1999년에 연재해뒀던 일기 60여 편이 온라인상에 남아있었다. 그는 “당시 카페 글을 본 고교 국어교사 친구가 ‘꼭 책으로 내야 한다’며 2019년부터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돌았는데, 못 배운 사람이 무슨 책을 내냐 싶어서 부끄럽고 창피했다”고 했다.

개구쟁이에 사고뭉치였던 소년은 억척스러웠다. 군 제대 이후 젖소 목장, 한우비육 농장, 인삼 재배를 통해 성공했다. 고교 졸업장도 뒤늦게 받았다. 지금은 청주에서 아흔 넘은 노모를 돌보며 살고 있다.

1954년 한국에서 84만명이 태어났고, 1960년대 우리 국민 10명 중 6명 이상이 농촌에서 살았다. 그래서 이씨 일기는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이의 기록이기도 하다. 책을 펴낸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은 “옛날 기록을 이렇게 그대로 보관한 사례가 드물다”며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40대는 이 책을 통해 부모 세대 삶을 간접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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