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부처님이 사람 죽였다' 하지 않을까요?"

조선일보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입력 2019.01.30 03:14

대형 불상을 본 달라이 라마, 뼈있는 농담으로 법문 시작

저성장에 종교계도 고민 크지만 공감·연민 같은 初心 되찾을 기회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종교계에도 저출산과 저성장 여파가 미치고 있다. 천주교의 경우 성직 희망자 수가 줄고 있다. 2008년 1413명이던 교구 신학생 수가 2017년엔 1068명으로 줄었다. 불교계에선 '행자(行者)는 천연기념물'이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개신교 역시 신자와 헌금이 줄고 있다는 통계가 몇 년째 교계 신문에 보도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근대화·산업화와 함께했던 종교계의 성장 신화도 이제 저물어가고 있는 셈이다. 성장을 전제로 보면 비관적이다. 그러나 종교계의 성장률 저하는 오히려 본질을 회복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그 기회는 '작은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만난 '다비다자매회' 대표 김혜란 목사는 "작은 것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좋은 사람들이더라"고 했다. 다비다자매회는 싱글맘들이 서로 돕는 모임이다. 김 목사 본인 역시 서른아홉에 남편과 사별한 싱글맘이다. 자매회는 11년째 서울 이수성결교회에서 매월 넷째 토요일 오후 2시에 모임을 갖는다고 했다. 시간과 장소는 바꾸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는 "사정이 생겨 잠시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싱글맘들이 언제라도 내키면 찾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작은 등대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이 모임은 3S가 모토다. '단순하고(simple) 작고(small) 천천히(slow)' 가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 역시 간단했다. "처음엔 유명 인사를 초청해 강연도 들었어요. 그런데 회원들 반응이 별로였어요. 그래서 저명 강사 초청 대신 우리들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더니 사연이 봇물 터지듯 했어요."

사단법인으로 등록한 다비다자매회는 정부나 지자체 예산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지원받은 적도 있지만 지금은 받지 않는다고 했다. "예산 지원을 받으면 실질적으로 싱글맘에게 도움이 되는 일보다는 지원 프로젝트 보고서를 위한 일을 해야 했어요. 그 일을 맡을 직원도 따로 뽑아야 했고요. 그러다 보면 '일을 위한 일'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예산 지원은 받지 않아요." 저명인사나 돈보다는 경청과 공감을 택했다는 이야기였다.

31년 동안 인도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의 제자로 수행하다 귀국한 청전 스님은 특별한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달라이 라마가 세계적 정신 지도자로 알려지면서 티베트 불교도 물질적으로 풍요해졌다고 한다. 대형 불사(佛事)도 일어난다. 한 번은 대형 사찰이 만들어져 낙성식에 달라이 라마가 초대됐다. 엄청난 크기의 불상이 세워진 사찰이었다. 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법문 차례가 되자 그 불상을 힐끗 쳐다보고는 뼈 있는 농담으로 법문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큰 불상이 어느 날 넘어져서 사람을 깔게 되면 '부처님이 사람 죽였다' 하지 않을까요?"

이 에피소드를 들으면서 지난 2006년 인도에서 달라이 라마의 법회를 참관한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그는 수천명의 청중을 대상으로 법문을 마친 후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때 저 뒤에서 초라한 행색의 연로한 티베트 스님들이 단상 쪽으로 다가왔다. 수행원들은 제지하려 했지만 달라이 라마는 가까이 오게 해서 다정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손을 잡아주었다. 그들의 눈에선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달라이 라마가 법회를 떠나는 모습을 보려고 현관에 나갔더니 소형차 대여섯 대가 서 있었다. 수행원과 달라이 라마의 차는 똑같았다.

청전 스님과 김혜란 목사의 이야기에서 방점은 크기의 대소(大小)에 찍혀 있지 않았다. 작아야 아름답다는 것도 아니었다. 종교가 크기 혹은 성장에 휘둘려 공감·연민이라는 본질을 놓치면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프란 치스코 교황이 항상 강조하는 것도 상대방과 손을 맞잡고 눈을 마주치라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나의 종교는 친절"이라고 한다. 지난해 입적한 설악 무산 스님은 이를 더 쉽게 풀어서 "종교는 사람들 비위 맞춰주는 것"이라 했다. 시선을 마주치며 경청하고 공감하기엔 작은 크기가 좋다. 저성장 시대는 종교가 본질과 초심에 더욱 충실할 수 있는 조건일 수 있다.

 

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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