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촌에 '미술관 같은 절', 문고리 하나까지 예술

조선일보

    2019.08.05 04:09

    정위 스님… 도자기 조각으로 벽 꾸미고 법당 바닥은 폐가의 대청마루
    나무로 깎은 새·木魚 장식까지 옛 물건 배치해 현대식 사찰로

    서울 봉천동 관악산 자락엔 아름다운 절 '길상사'가 있다. 낙성대 남쪽 비탈길 따라 빽빽한 빌라촌 골목 꼭대기에 자리한 길상사는 사각형 건물로 일반 빌라처럼 보인다. 다가서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외벽에 붙은 우편함. 도자기로 빚은 물고기의 쩍 벌린 입이 우편함이다. 마당에 들어서면 도자기 조각이 모자이크처럼 박힌 도벽(陶壁)이 손님을 맞는다. 미륵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소나무와 석탑이 그려져 있다. 도예가 변승훈 작품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문과 손잡이 하나까지 작은 예술품이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작은 선물이 숨어 있다. 2층 계단참 공중엔 목어(木魚)가 헤엄치고, 3층 법당 입구엔 나무로 깎은 새 두 마리가 날고 있다. 법당도 정갈하다. 바닥은 옛 한옥을 헐 때 나온 대청마루를 옮겨 깔았고, 천장엔 반야용선에 악착보살이 매달려 있다. 뒤뜰 텃밭에서는 토마토·상추 등이 자란다.

    길상사 정위 스님이 어머니에게 받은 무명천에 수놓은 꽃들을 펼쳐 보이고 있다. 20여 년에 걸쳐 수수한 아름다움을 지닌 들꽃 20여 가지를 수놓았다. /김지호 기자

    길상사는 1982년 비구니 묘행 스님이 창건한 사찰. 1996년 150평 터에 새로 지으면서 현대식 사찰로 탈바꿈했다. 현재의 모습을 가꾼 주인공은 묘행 제자인 정위(64) 스님이다.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전국 골동상과 고물상을 다니며 대청마루, 대문 등을 모았다. 그렇게 수집한 옛 물건들을 현대적 건물에 배치하니 미술관 닮은 사찰이 됐다. 정위 스님은 "'100년 후에도 사찰은 기와집이어야 할까' '현대인들의 신행 생활에 어울리는 공간은 어떤 것일까'를 고민한 결과"라며 "은사 스님의 전폭적 지지 덕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정위 스님은 얼마 전 '정위 스님의 자수 정원'(브레드 출판사)이란 책도 펴냈다. 20년간 자투리 시간에 자투리 천과 실로 수놓은 작품 40여점을 수록했다. 자수(刺繡)와의 인연은 무명 한 필로 시작됐다. 속가(俗家)의 어머니는 딸자식이 출가(出嫁)할 때마다 무명 한 필과 흰 무명실 한 꾸러미를 선물했다. 고교 졸업 후 출가(出家)한 정위 스님도 예외가 아니었다.

    길상사 법당 앞엔 나무를 깎아 만든 새 두 마리가 날고 있다(위). 아래는 길상사 전경. /김지호 기자·김한수 기자

    따로 자수를 배운 적은 없었다. 처음엔 전등 스위치나 콘센트 등을 보기 좋게 가리기 위해 수를 놓았다. 사찰에 색실이 갖춰진 것도 아니어서 꽃을 수놓다 어울리는 색실이 없으면 그냥 놔뒀다가 색실이 구해지면 마무리하는 식이었다. 그는 "일과를 마치고 저녁 시간에 수를 놓다 보면 새벽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기 일쑤였다"며 "수를 놓는 동안은 삼매에 빠지고 완성했을 때는 희열을 느꼈다"고 했다. 수행이었던 셈이다. 차츰 소문이 나면서 동네 주부들과 함께 '자수 교실'도 열었다.

    작품들은 담백하다. 색깔도 형태도 과하지 않다. 사찰 여기저기에 놓여 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있는 줄 모른다. 책엔 꽃을 수놓은 자수 사진과 함께 짧은 글을 실었다. '해남 미황사 가는 길에 처음 본 자운영. 논에 심어 거름도 하고, 어느 지방에서는 떡도 해 먹는다 하고, 주지 스님은 어린 시절 삶아 먹기도 했단다. 나는 그저 논둑에 핀 자운영 꽃 무리 물결치는 것이 예뻐 꽃대를 살랑살랑 휘어보았다.'

    스님은 어머니께 받은 무명 한 필을 펼쳐 보였다. 20미터에 이르는 두루마리를 펼치자 차례로 20여 가지 꽃이 얼굴을 드러냈다. 싸리꽃으로 시작해 오이꽃, 엉겅퀴꽃, 애기똥풀꽃, 매화, 연꽃, 패랭이꽃 등을 거쳐 모란까지.

    정위 스님은 " 100일 전 어머니가 101세로 돌아가셨다"며 "49재를 모시며 손님들께 작은 정성이라도 드리려고 준비하던 책을 서둘러 냈다"고 했다. 어머니가 출가한 딸에게 전한 무명 한 필이 자수 작품과 책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는 "절 건물도, 자수도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했을 뿐인데 찾아오는 분들이 행복해하시더라"며 "그런 모습을 보면 제가 더 감사하다"고 했다.

     

    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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