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없는 세상… 믿고 싶지 않았다"
강상중 도쿄대 교수의 '어머니'
"나라도 없었고 글도 못읽던 그분… 그러나 내게 세상을 가르쳐주셨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 독자들을 울리고 있는 가운데 재일동포 2세 정치학자 강상중 도쿄대 교수의 사모곡(思母曲) '어머니'(사계절)가 국내에서 출간됐다. 작년 일본에서 출간돼 34만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다. 1950년 일본 구마모토에서 태어난 강 교수는 '생각하는 힘' '청춘노트' 등 쓰는 책마다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는 '일본 지식인사회의 스타'. 일본이 드러내길 꺼려하는 재일동포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일본사회에 대해 날선 비판을 마다하지 않는데도 '강사마'로 불리며 일본 TV의 섭외 1순위로 인기가 높다.
'어머니'는 어떤 책?
'어머니'의 도입부는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의 첫 문장('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을 연상시킨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와 마찬가지로 강상중도 어머니의 죽음을 통보받는다. 그러나 뫼르소가 어머니 부음에 무덤덤하고 사무적 절차를 따른다면 강상중은 "어머니가 없는 세상이라니.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일본 사회에서 재일교포라는 이방인적 존재로 살아온 강상중에게 어머니의 부재는 마지막 언덕마저 없어진 것과 같았다.
장례를 위해 고향 구마모토로 가면서 강상중은 "어머니의 기억을 더듬는 것이 글을 아는 내게 글을 모르는 어머니가 위탁하신 유언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 16세 나이에 약혼자의 이름과 주소만 들고 일본으로 건너온 우순남 처녀가 하루코(春子)로 마감하기까지의 삶이다.
강상중의 어머니는 그 시절 대부분이 겪은 가난에 타국살이의 설움과 문맹(文盲)이라는 삼중고를 겪었다. 태평양전쟁 와중에 영양실조로 첫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좋은 일, 궂은 일이 있으면 무당을 불러 굿을 벌였고 어릴 적 노동요인 '차(茶)따기 노래'를 흥얼거렸다. 시궁창을 뒤져 돈 될 물건을 건졌고, 거지로 전락한 동포를 거둬 양돈을 하고, 때론 밀막걸리 장사도 했다. 세무서원이 들이닥치면 돌을 던지며 저항했고, 지극정성으로 제사를 모셨고, '유스(뉴스의 어머니식 발음)'를 보며 누구보다 궁금한 게 많았던 사람…. 강상중은 어머니 1주기 때 형수로부터 어머니의 생전 녹음편지를 받는다. "데쓰오(강 교수의 일본 이름), 너는 아버지나 내가 모르는 세상을 많이 가르쳐 주었다. 자세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세상이 있다는 것도 알았으니 그것만으로도 글을 모르는 나한테는 즐거웠다. 데쓰오, 고맙다, 정말 고맙다…."
김한수 기자(우리집 큰아이)
조선일보 2011.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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