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넷 신문 삽화가'의 입사 50주년 기념식

조선일보

    입력 2019.11.19 03:00

    조선일보 김도원 화백
    유머와 따뜻함 담은 그림으로 반세기 '기사 삽화' 장르 개척

    "자꾸 그리니 나만의 그림 돼… 나의 線은 세월이 만들어낸 것"

    "제 그림은 작품도 아니고 그저 기사에 복무하는 그림입니다. 잘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축하해주시니 그저 부끄럽습니다."

     


    18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조선일보사 편집국. 본지 '만물상'과 '일사일언' '리빙포인트' 등 숱한 기사에 삽화를 그리는 김도원(84) 화백은 후배가 그의 답사를 대독(代讀)하는 동안 조용히 서 있었다. 김 화백의 조선일보 입사 5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18일 오후 김도원(왼쪽) 화백이 박두식 조선일보 편집국장으로부터 기념패를 받고 있다. /고운호 기자

    김 화백은 1959년 출판사 민중서관 도안사로 시작, 대한일보를 거쳐 1969년부터 조선일보에서 일했다. 올해 여든넷의 현역, 국내 언론계 종사자 가운데 최고령이다. 그러나 후배들에게 배워서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고, 한밤에도 FPS(일인칭 슈팅) 컴퓨터 게임을 즐긴다. 그는 "일인칭으로 컴퓨터 속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김 화백은 10년 전부터 청력이 약해져서 잘 듣지 못한다. 지난해에는 전립선암 수술을 받았고, 지팡이를 짚고서 출퇴근한다. 하지만 김 화백은 손자뻘 되는 기자들과 함께 칸막이로 둘러싸인 책상에 앉아 하루 많게는 4~5장씩 삽화를 그린다. 오후 3~4시쯤 기사가 들어오면 오후 6시까지 오로지 침묵 속에서 선승(禪僧)처럼 고독하게 작업에 몰두한다. 장당 걸리는 시간은 30분. 김 화백은 "저는 가진 재주가 이것밖에 없어서 그저 하루하루 그렸다. 그러다 보니 조선일보에서 50년을 그리게 됐다"고 회고했다.

    이미지 크게보기김도원 화백의 캐리커처와 김 화백의 삽화를 담은 50년 기념 액자. 1969년에 조선일보에 입사한 김 화백이 반세기 동안 조선일보 독자와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온갖 분야의 뉴스 삽화들을 망라했다. /조선일보 디자인편집팀

    모난 구석 없이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인물들을 선 하나로 정감 있게 그린 그의 삽화는 조선일보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한국 신문 삽화의 상징이 됐다. 간결한 선이지만 날카롭지 않고 유머와 따뜻함을 잃지 않아서 스누피 만화에 등장하는 '찰리 브라운'에 비유되기도 한다. 김 화백의 팬인 이남호 고려대 교수는 "개성이 강하면서도 남을 위해서 존재하고, 순전히 남을 위하면서도 자기가 없어지지 않는다"고 평했다.

    그림 구석에 작게 쓴 'do'라는 서명 때문에 '도(do) 화백'이라는 애칭으로 더욱 유명하다. 하지만 그의 이름 중간 자인 '도'에서 따온 서명 'do'도 슬그머니 떼버렸다. 김 화백은 "너무 오래 그려 싫증 난 독자들이 많을 것 같아서"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김 화백은 그림으로 자신을 이끌었던 건 "가난"이라고 했다. "어릴 적 손재주가 좋아서 잡동사니로 뚝딱 장난감을 만들었는데, 재료가 턱없이 부족하니 대신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서울대 응용미술과를 다니다가 경희대 경제학과로 옮겼다. "미대에 진학했는데 실기보다 이론을 더 많이 가르쳤다. 하고 싶은 것 하나만 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 견뎌내질 못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로 옮긴 뒤 만평과 연재만화 중심의 한국 언론계에서 기사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요약해서 전달하는 '기사 삽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그는 이날 기념식의 답사(答辭)에서 "저는 그림을 누구한테 배운 적도 없고 스승도 없다. 그저 자꾸 그리니 제 그림이 됐다. 그런 의미에서 제 선(線)은 세월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50년 동안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면 혹시 지겹지는 않을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지금도 그리는 일이 재미있습니다. 젊었을 땐 10년, 20년이 길어 보였는데 지나고 보니 불과 1~2년밖에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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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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