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랑해요!"
그날 대구까지 축하하러 내려온 대학 단짝 친구들 여남 명은 장인어른께 술값이나 좀 우리려다가 “아직도 구태의연하구나!”란 한마디에 질려 꼼짝도 못하고 물러섰다니 내가 참으로 민망했는데, 내 친구들은 그날 들은 그 얘길 또 두고두고 심심하면 ‘구태의연하구나!’를 써먹어 나를 매우 곤혹스럽게 만들곤 한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우리 집에서 행하는 ‘우귀(于歸)’라는 행사로 또 잔치를 벌였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마을, 같은 범띠 동접인 임경택 친구와 같은 날 두 집이 우귀 잔치를 했다. 그날 우리 집에 하객으로 온 김우석이란 수룡골 친구는(서울농대 농업경제과 출신) 낮술에 곯아떨어져 신방에서 잠이 들었다가 부스스 일어나서 소피를 본다는 것이 새색시의 새 이불에 세계지도를 그렸으니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었다.
그즈음 나의 친구들은 선을 스물 몇 번도 더 보곤 했는데 나는 어째 그 탈바꿈 과정에서 큰 걸림돌이 없었던 모양인지 선을 딱 단 한번밖에 보지 않고 결혼에 이르렀다. 그때 신부 입장에서 보면 전기도 없는 초가삼간 시골집에 신랑도 없는 시집살이에다 곳곳에서 풍겨오는 쇠똥 냄새가 역겨웠을 수도 있을 테지만, 시골 살림이란 것이 그때는 다 그랬다.
사십여 마지기 되던 논과 소도 대학 공부하느라 다 팔아먹고 겨우 열댓 마지기만 남은 형편이었으니…….
우리 부부는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한 것이 아니라 결혼했기 때문에 사랑한 세대에 속한다. 그래서 하루도 안 보면 못 살 것 같이 애틋한 정은 없어도 그저 그런 무덤덤한 속에서 사랑이 싹텄다고 해야 마땅할 듯하다. 경상도 사나이의 무뚝뚝함에다 입에 익은 소리가 아니라서 나는 속으로야 사랑할망정 겉으로 입에 담아 사랑한다는 말을 아내에게 들려준 적이 별로 없다. 나이가 들어서는 또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가 쑥스러워 가끔 ‘랑해’라는 말을 입에 올려보곤 하는데 그것은 내 나름으로 ‘사’를 생략한 ‘사랑해’라는 말이다. 그러는 사이 세월이 흘러 이미 사랑을 얘기하기엔 너무 늙어버렸나 보다. 그래도 남들이 흔히 데리는 식모 한 번 데리지 않고 펑생토록 내조해 준 아내에게 감사한다.
궁색한 형편에 세 아이 길러 성취시키고, 시누이 시집보내고 시동생 둘을 대학 공부 가르쳐서 살림을 차려 주는 등의 뒷바라지에다, 오랫동안 바깥출입을 못하고 똥오줌을 받아내야 하는 시어머니 모시느라 애쓰며 50년 넘게 하루같이 살아온 아내에게 ‘랑해요’라고 속삭여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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