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노숙인을 위한 새 밥집… 20년 만의 기적이죠"
이탈리아 출신 김하종 신부, 내달 1일 성남에 '안나의 집' 신축
IMF 이후 작은 급식소에서 시작 "나는 한국에 온 봉사자일 뿐"
이번에도 인터뷰는 약속 시간보다 30분 늦게 시작됐다. 14일 오전 10시 30분 경기 성남시 성남동성당 구내 노숙인 시설 '안나의 집'에 도착했을 때 대표 김하종(61·본명 빈첸시오 보르도) 신부는 봉사자들과 함께 트럭에서 짐을 나르고 있었다. 김 신부와 인터뷰에선 흔한 풍경. 쌀포대나 후원물품이 도착하면 바로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자와 사진기자도 거들었다. 폭포처럼 땀을 쏟으면서도 웃으며 짐을 나르는 그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솔선수범이 김 신부의 힘이다.
이번 짐은 쌀이나 후원물품이 아니었다. 20년 역사를 적은 '꿈, 나눔 아름다운 동행'이란 책자와 '안나의 집 신축 개관식 초대장'이었다. '안나의 집'은 20년 셋방살이를 끝내고 오는 9월 1일 현재의 급식소 맞은편에 지하 1층, 지상 4층 연건평 1345㎡(약 406평) 규모의 새집을 지어 개관식을 갖는다.
'안나의 집' 20년은 기적의 역사다. 이탈리아 오블라띠수도회 소속으로 1990년 한국에 온 김 신부가 '안나의 집'을 시작한 것은 IMF 외환위기 직후 노숙인이 쏟아져 나오던 1998년 7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김 신부의 모습에 감동한 인근 뷔페식당 오 마테오 사장이 자신의 식당 한 개 층을 급식소로 제공하면서다. 그해 10월 현재의 성남동성당 구내 조립식 건물로 옮겼다. 그 후 20년간 이 급식소는 하루 평균 550명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해 지난 4월엔 연인원 200만명을 돌파했다. 후원회원은 8000명. 월 5000원 소액 후원자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지자체 지원과 '우연히 들어오는 목돈'으로 꾸려왔다. "우연은 불안하죠. 안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쌀이 떨어져 걱정하고 있으면 누군가 쌀을 보내줍니다. 작은 기적이 계속 일어나요."
성남동성당 시설을 무상으로 약속받은 20년은 금세 다가왔다. 2016년 김 신부는 자포자기 상태였다. 새집을 지을 땅도, 돈도 없었다. '결국 문 닫아야 하나' 생각할 때 기적이 시작됐다. 맞은편 공터가 그린벨트에서 풀렸다. 수원교구(교구장 이용훈 주교)가 10억원을 지원해 땅을 샀다. 때마침 한 방송에서 그의 삶을 다큐로 만들어 소개하자 후원금이 모여 건축을 시작할 수 있었다. 김 신부는 "계획을 세우면 못했을 거예요. 예수님께 맡기면 생각 못한 일이 생겨요. 기적처럼 2년 동안 모든 일이 이뤄졌어요"라고 했다.
새집을 안내하며 김 신부가 자랑했다. "지금까지는 노숙인들을 '인간답게' 모시지는 못했어요. 이제 인간답게 살 수 있어요." 우선 식당 진입로부터 건물 뒤쪽으로 'ㄷ'자로 꺾었다. 식사를 기다리는 줄이 바깥에서 보이지 않도록 한 것. 식당 출구 앞엔 샤워실과 이발실을 마련했다. 30명을 수용하는 기숙사도 다닥다닥 붙어 있던 2층 침대 대신 널찍한 공간에 개인별 칸막이를 친 침대로 바꿨다. 상담실, 진료실, 강당, 작업장도 새로 단장했다.
꿈에 그리던 새집을 마련했지만 김 신부는 여전히 안타깝다. 어려운 이웃이 더 늘어나는 것 같아서다. "현대사회는 빠르고 똑똑하고 복잡해요. 세계 어디나 그렇죠. 여기서 식사하는 분들은 그걸 못 따라가요. 돈 자체는 나쁘지 않아요. 그러나 나눔과 배려를 배워야죠. '안나의 집'은 돈, 시간, 관심, 재능을 나누는 일반 사람들 덕에 꾸려갑니다."
호암상, 포니정 혁신상 등 많은 상을 받았고 불가능해 보이던 새집도 지었다. 우쭐해질 법도 한데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대단하지 않아요. 예수님이 제 생활을 인도해 주셔서 생긴 기적일 뿐. 저는 봉사자입니다. 봉사하러 한국 왔어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낮 1시가 되면 앞치마를 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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