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정치인 이재명을 만나면서 세 번 당혹했던 이유
2016년 성남시장이던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처음 만났다. 기초단체장이 대선에 출마한다는 게 무척 생경했다. 하지만 그와 대화를 나눈 후 생각이 달라졌다. 말은 재치 있고 시원시원했다.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를 넘나들면서도 막힘이 없었다. 자기주장을 펴는 논리력과 디테일 또한 놀라웠다. 그는 반드시 근거 수치를 댔다. 다 외우고 있는 것 같았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자신만만했다. 똑똑하고 유능해 보였고 수완도 있었다. “행사장에서 한번 봤는데 다음 날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말해달라’는 전화를 받고 놀랐다”고 전하는 각계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후보를 수차례 만나면서 의문이 싹텄다. 그는 “내가 기본적으로 보수인데 보수가 나를 몰라준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어떻게 보수냐”고 했더니 자신이 얼마나 시장경제를 신봉하고 동맹과 안보를 중시하는지 길게 설명했다. 그런데 실제 그의 공약은 시장 통제와 세금으로 퍼주는 포퓰리즘이 상당수였다. 대북 정책과 한미 동맹에 대한 인식도 보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정책과 공약을 설명하면서 내세운 수치도 때론 정확한지 의심스러웠다. 대화가 길어지면 이전 발언과 다르거나 모순되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가 대표 치적으로 자랑한 계곡 정비 사업은 남양주시와 ‘원조 논쟁’에 휩싸였다. 지역 화폐 정책엔 국책 기관이 의문을 제기했다. 기본소득 시리즈는 현실성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음식점 총량제나 주4일제 같은 설익은 공약도 간 보듯 쉽게 던졌다. 이 지사의 말과 공약을 어디까지 신뢰할지 당혹스러웠다.
대장동 의혹에서도 이 후보 말은 앞뒤가 잘 맞지 않았다. “단군 이래 최대 공익 환수 사업으로 내가 직접 설계했다”고 하더니 화천대유에 8000억원 넘는 특혜가 간 것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추가 이익 환수 장치를 두자는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자신이 아닌 성남도시개발공사가 그랬다고 했다. 친형과의 불화에 대해 “형이 시정에 개입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형이 대장동 사업에 의문을 제기하며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을 비판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 형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다는 의혹도 부인했지만 사실이었다.
이 후보는 잘못이나 오류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았다. 자기 생각에 반대하면 가차 없이 몰아쳤다. 그의 방침에 반기를 든 남양주시에 대해선 감사를 벌였다. 지역 화폐의 문제점을 제기한 국책연구원장을 향해 “청산해야 할 적폐”라며 문책을 요구했다. 비판 보도는 가짜 뉴스로 몰았고 무더기 고발·소송으로 대응했다. 이 후보에 대한 비판 기사를 냈다가 “언론사를 폐간시키겠다”는 말까지 들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까 놀라웠다.
이 후보는 달변가다. 하지만 말이 너무 현란하면 외려 불신을 키운다. 당장은 넘어가도 근본적 의문을 해소하진 못한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신뢰를 주지 못하는 유능함은 오래갈 수 없다. 이 후보를 오래 지켜보면서 그의 현란한 말솜씨에 한번,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말에 또 한번, 가차 없는 말 공격에 다시 한번 놀랐다. 국민은 조금 어수룩해 보여도 솔직한 사람,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를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을 더 신뢰한다. 집권당 후보가 되고도 지지율 정체의 늪에 빠진 이유가 무엇인지 이 후보는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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