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모·염장이·대장장이 이야기가 곧 팔만대장경”
설악무산 스님 입적 5주기… 말·글 86편 모은 ‘설악…’ 출간
“불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라 깨달음을 실천하는 종교입니다. 부처의 삶을 사는 사람이 부처입니다. 부처의 삶을 살지 않고 그냥 부처가 되겠다고 죽을 때까지 화두를 붙들고 참선만 해서는 부처가 되지 않아요.”
지난 2015년 8월 내설악 백담사. 신흥사·백담사 조실(祖室) 설악무산(1932~2018) 스님은 석 달 동안의 하안거를 마친 선승(禪僧)들에게 일갈했다.
어디에도 걸림이 없던 ‘무애도인’이자 ‘설악산 호랑이’로 불렸던 무산 스님이 남긴 법어, 설법, 기고, 언론 인터뷰 등을 총망라한 ‘설악무산의 방할(棒喝)’(인북스)이 출간됐다.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시조시인이었던 스님은 신흥사와 조계종 기본선원 조실, 원로의원을 역임했다. 필명인 ‘오현 스님’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만해 한용운 선사를 현양하는 만해대상·만해축전을 개최했고, 노년엔 백담사 무문관에서 4년 동안 수행하다 입적했다. 김병무 설악·만해사상실천선양회 감사와 홍사성 불교평론 주간이 스님의 5주기를 앞두고 86편의 말과 글 자료를 모았다.
책에는 깨달음의 실천을 위해 애썼던 스님의 간절한 마음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선승들을 대상으로 스님은 “부처 될 생각 말고, 화두에 속지 말라”며 일종의 충격 요법을 펼쳤다. 그의 ‘경쟁 상대(?)’는 천년 전 중국 고승이 아니라 스티브 잡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각색자, 프란치스코 교황 같은 이들이었다. 그들의 한마디가 세계를 열광시킨 것처럼 스님은 항상 우리 시대의 아픔을 화두로 삼아 세상을 깨울 화두를 던지려 했다. 매너리즘은 경계 대상 1호.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늘의 문제가 화두인데 우리 선승들의 화두는 천년 전, 중국 선승들의 도담(道談)” “알코올중독자가 중독되는지 모르고 중독되듯이 화두 중독자가 되어버리면 일생을 만날 무(無), 무, 무… 하다 끝난다.” 그는 또 “비구(比丘)나 시인으로는 (한국 근대 불교의 중흥조) 경허를 만날 수 없었다. 동대문시장 그 주변 구로동 공단 또는 막노동판 아니라면 생선 비린내가 물씬 번지는 어촌 주막 그런 곳에 가 있을 때만이 경허를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항상 죽음을 의식하고 깨어있기 위해 거처에 본인의 두개골을 스캔해서 석고로 만든 해골을 놓고 어루만졌다. 그의 법문은 한국 불교를 향한 정신 번쩍 들게 하는 몽둥이[棒]이자 고함[喝]이었다.
반면 재가자들에게는 봄햇살처럼 따뜻했고 스스로를 낮췄다. 그는 국가지도자부터 마을 촌부까지 허물없이 교유했고, 마을 노인회장을 자신보다 상석(上席)에 모셨으며, 사하촌 학생들 장학금까지 살뜰히 챙겼다. ‘염장이 이야기가 팔만대장경’은 스님이 40년 동안 시신을 닦아온 염장이와 나눈 대화 형식의 법문. “나를 위해 하는데 시신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니 나는 아직 멀었다. 부끄럽다”는 염장이를 보며 스님은 “내가 참 부끄러웠다. 염장이, 대장장이, 주모의 이야기가 팔만대장경”이라고 말한다. ‘우란분재 제대로 하는 법’에선 일반인들에게 행복하게 사는 법을 친절히 설명한다. “내가 밥장사를 한다고 하면, 손님한테 밥을 해줄 때 부처님께 공양 올린다는 생각으로 하면 피로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돈을 벌겠다고 생각하면 힘이 드니까, 직장 생활도 내가 이 회사를 도와준다는 생각,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일하면 피곤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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