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파출소장 1
세상이 어수선해지자 드디어 계엄령이 선포되고 군인들이 치안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영도 경찰서에서 우리 학생회 간부들을 부르더니, 군의관인 듯한 육군 소령짜리 경찰서장이 우리 간부들에게, 각각 파출소에 나가서 경찰 역할을 하라면서, 나에게는 청학 파출소장을 맡으라는 것이었다. 그때 학술 숙부님 댁이 청학동에 있었기에 거기와 가까운 곳이라, 각과에서 차출된 십여 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영도 북쪽 끝, 버스 종점에 있던 청학 파출소에 나가 보니, 순경이란 사람은 하나도 없고 빈 책상만 놓여 있었는데, 말이 파출소장이지 치안이 뭔지를 알아야 뭘 해도 하지!
단지 들은 것이라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뿐이었다. 치안(治安)이 뭔지도 모르고 경찰서에 경무과, 정보과, 보안과, 형사과, 강력계 등등 여러 과가 있었지만 그게 도무지 각각 어떤 일을 분담하는지도 몰랐고, 파출소에 가서 해야 할 업무 지침도 없고, 행동 요령도 없었으며, 전화기 사용법이나 보고 요령도 알려주지 않았고, 사건(事件)과 사고(事故)는 어떻게 서로 다르며,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육하원칙에 따라 뭘 어떻게 누구에게 보고하라는 지시도 없었다. 참으로 가관이었다.
그러자니 그냥 멍청하게 책상에 앉아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그때 식비에 충당하라며 몇 만 환을 나에게 줬는데 그걸 가지고는 어느 코에 바를 수도 없는 액수라서 각자 알아서 때가 되면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오는 방식을 취하기로 하고, 집이 영도 밖인 친구들에게만 수백 환씩을 나눠 주고 빵이라도 사 먹으라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치안 유지 같은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 식비란 것에만 눈독을 들이는 작자들이 있어 가관이었다.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는 마음이 있다’더니 바로 그 짝이었다. 아마도 한 일주일쯤 그렇게 파출소장 행세를 했는데 무슨 사건 사고가 생겨 출동한 일도 없고, 스스로 순찰을 돌아보지도 않았으며 딱히 할 일이 없어 흐지부지 임무가 끝나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싱겁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학생들이 치안을 유지해? 무슨 재주로? 뭘 안다고? 에라 이 떡을 할 놈의 세상 같으니라고. 몇몇이 파출소를 지키는 사이 하릴없다는 걸 잽싸게 눈치 챈 녀석들은 그 어수선한 와중에 소풍을 다니는 족속도 있었고, 몇몇은 가로등만 조는 한적한 밤에 야간 당직을 서기도 했다. 치안? 학생들이 어찌 그걸 감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