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라면 깔 일이지


12번이 아니라 100번이라도 밤송이를 뭐로 까라면 까는 식의 군사문화가 판치던 세월의 1963년인데 어긋난 깻벌거지가 모로 기며언감생심 12번을 7번으로 깎으려 들었으니까.

나의 헤헤거림은 천지를 모르고 깨춤을 춘격이었다. 직속 상사의 명령, 그것도 입사 첫날, 첫 번째 명령에 반기를 들었으매 조직에 살아남긴 틀린 노릇이었다. 나의 돌출 언행이 회사 안에 어떤 공론을 돌게 했는지는 자세히 알 길이 없었다. 다만 그가 내 아귀통을 돌리는 대신, 징계위원회에서 호랑이 새끼를 기르느니 일찍 도태시킴만 같지 못하다.’고 논의됐음직한 바, 따 놓은 당상이던 취직이 다홍치마 첫날밤도 못 넘기고 징계 파면으로 치닫는 찰나였다. 이젠 팔아 치울 소도 없었다.


다행스레 학생 티를 못 벗었달 뿐 악의는 없었다는 구실 덕분에 파면의 위기를 모면했지만, 그로써 나에겐 코피 터지는 다양한 방식의 신참 훈련이 산지사방에서 눈물을 강요했다. 우리 황 계장은 지능적으로 호된 담금질을 나에게 안겨 왔다. 그는 기숙사에서조차 날밤을 밝히게끔 갖가지 업무 숙제로 나를 옥죄었다. 더구나 다른 간부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고 가끔 힐난과 골탕조차 섞도록 부추겼다. 


하지만,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했던가? 수습사원 시기에 겪은 그 무서운 시련 덕분에 나는 일에 파묻혀 사는 일벌레가 되었으니, 지금 와서 보면 오히려 우리 계장님께 감사를 드려야 마땅한 일이다. 그 뜨겁고 쓰라리던 담금질이 나를 철들게 했을 뿐더러, 청춘을 불사른 한화에서의 30년 세월에 처음에는 매우 조그맣던 기업도 일취월장해서 드디어 국내 10대 그룹으로 발돋움하는 걸 내눈으로 지켜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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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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