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 니제르의 그 꼬마는 의사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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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제르의 ‘꼬마’가 떠오른 것은 TV에서 우연히 니제르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큐는 언제 촬영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2005년 방문했을 때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뒤에 확인해보니 2010년 방영된 다큐의 재방송이었습니다. 시간 차이가 많지 않았습니다.) 사하라 사막 바로 남쪽의 거친 국토와 가난한 삶도 그대로였습니다. 당시의 기억이 너무나 생생했기에 다큐 속 니제르의 모습이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길에서 만난 ‘꼬마’가 떠올랐습니다.
2005년 니제르를 방문한 것은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의 구제활동을 취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해에 니제르에는 엄청난 가뭄에 더해 메뚜기떼가 농작물을 휩쓸어 국민들이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조현삼 서울광염교회 목사님이 단장을 맡고 있는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은 현지를 찾아 기아에 허덕이는 주민들에게 쌀과 테프(좁쌀의 일종)를 지원했습니다. 저와 사진부 허영한 기자(현 아시아경제 사진부 부장. 이 글에 실린 사진은 모두 허영한 기자가 촬영했습니다.)는 구호활동을 취재하기 위해 동행했지요.
솔직히 저는 그때까지 나이지리아는 알았지만 니제르라는 나라는 몰랐습니다. 그 당시 니제르는 세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빈국(貧國)이라 했습니다. 프랑스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였고요. 그래서인지 니제르 가는 비행기는 파리에서 출발했습니다. 파리를 출발한 에어프랑스는 ‘직행’이 아니라 ‘완행’이었습니다. 부르키나파소를 거쳐 니제르로 갔습니다. 니제르 수도 니아메(Niamey) 공항에선 색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여객기는 공항에 도착하면 다리 모양 통로에 출입구를 연결해 승객을 내려주지요. 니아메 공항에 그런 장치는 없었습니다. 여객기는 착륙한 후 크게 ‘유턴’을 해 머리를 이륙 방향으로 돌리고 활주로 위에 승객을 내려줬습니다. 공항에 내려서 보니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공항에는 여객기가 후진(後進)할 수 있도록 앞에서 밀어주는 자동차가 없었던 것입니다.(비행기는 스스로 후진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니 여객기는 다시 이륙하기 위해서는 활주로 방향으로 스스로 ‘유턴’해야 했던 것이지요.
짐도 컨베이어 벨트가 아니라 트럭에 싣고 대합실에 부려놨습니다. 짐을 찾아 공항 밖으로 나오니 아이들이 떼로 달려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손을 내밀고 뭐라도 달라고 했습니다. 처음엔 돈을 달라고 했지만, 사탕이든 담배든 뭐든 달라고 했습니다. 6·25 직후 우리나라 풍경도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18년 전 니아메 도심엔 고층빌딩이 없었습니다. 에어프랑스 지점과 재무부 건물만 고층빌딩이란 설명이었습니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엔 공설운동장이 있었는데 중국이 지어줬다고 했습니다. 니제르에 풍부하게 매장된 우라늄을 염두에 두고 진출했다고 했습니다. 중국이 세계 각국의 자원개발을 휩쓸던 때였습니다.
봉사단이 식량을 전해줄 대상은 니아메에서 동북쪽으로 2박 3일 자동차로 가야하는 사막 주변의 유목민들이었습니다. 가는 길은 처참했습니다. 도로는 거의 포장이 벗겨진 포장도로였는데 곳곳에 구멍이 나있었습니다. 그 도로엔 타이어 펑크 수리점이 무척 많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1970년대 우리나라 자전거포 수준의 펑크 수리점들이었습니다. 그만큼 펑크가 자주 나는 험한 길이었습니다. 그런 길에 가끔씩 긴 나무로 길을 가로막고 통행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니제르 나름대로의 고속도로 톨게이트였던 것이지요.
또 눈에 띄는 점은 시각장애인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점입니다. 저희 일행은 1~2시간에 한번씩 정차해 휴식을 취하고 이동했는데, 그때마다 마을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구걸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여성들이 아이들의 어깨에 손을 얹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지요. 당시 봉사단엔 의사 출신 선교사님이 계셨는데 영양실조에 더해 강한 직사광선을 오래 쬐다보니 후천적으로 실명한 사람들인 것 같다는 진단이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과 그 많은 사람이 자동차 소리가 들리고 외지인이 오면 도움을 청하기 위해 거리로 나오는 모습은 참 슬픈 풍경이었습니다. 물이 귀했습니다. 한번은 쉬고 있던 중 눈을 의심할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흙탕물이 고여있는 웅덩이가 있었는데, 근처에서 놀던 아이들이 빈 페트병에 그 물을 담아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진짜 사막’을 사실상 처음 경험했습니다. 과거에 이집트를 방문한 적 있지만 잠깐 한나절 정도 유적을 방문하는 정도였지요. 며칠씩 사막을 통과해본 적은 없었거든요. 게다가 7월이었습니다. 열기와 햇볕은 어마어마했습니다. 한국이었으면 폐차했을 것 같은 낡은 자동차의 에어컨은 선풍기 수준도 안 됐습니다. 지붕과 유리창에선 열기가 그대로 밀고 들어와 차 안은 튀김냄비 같았습니다. 땀이 나는 즉시 말라버려 옷은 젖을 틈도 없이 소금기가 허옇게 말라붙었습니다. 차창 밖으로는 누런 모래만 계속 펼쳐졌고요. 도로 주변에는 바짝 마른 뼈만 남은 가축의 사체가 그냥 방치돼 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초록색이 얼마나 축복받은 색깔인지 절감하게 만드는 풍경이었습니다. 가끔 보이는 나무는 대부분 가시가 뾰족뾰족했습니다. 나무조차 독한 놈만 살아남는 곳 같았습니다.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은 해외 구호에 나설 때 현지에서 물품을 구매합니다. 지진이나 쓰나미, 태풍 등 엄청난 재난이 발생한 경우에도 현지에 물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재난 때문에 유통망이 무너지고 그 때문에 필요한 곳에 물품이 전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봉사단은 현지에 도착해 물품을 구매해서 필요한 곳으로 수송해 나누는 방식을 택합니다. 지난번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때도 그랬지요. 2005년 니제르에서도 그랬습니다. 봉사단은 유목민 부족을 찾아가는 도중에 도시와 마을에서 쌀과 테프를 구매했습니다.
‘꼬마’를 만난 것은 그렇게 쌀과 테프를 지원하러 가는 길에서였습니다. 봉사단원들이 쌀과 테프를 구매하고 마을 주민들을 간단히 건강진단하는 사이에 저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어느 나라이든 아이들은 사탕을 좋아하지요. 한 아이에게 사탕을 한 움큼 집어 주려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이는 “저는 아까 받았는데요”라며 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놀랐습니다. 꼬마가 공짜를 사양하다니. 사실 저는 군대에 있을 때 일요일에 나오는 라면이 더 먹고 싶어서 식판을 휴지로 닦아서 줄을 한 번 더 서서 먹은 적도 있거든요. 솔직히 아이들의 얼굴을 구분하기도 힘들었지만 몇몇이 두 번 받아간다고 해도 사탕은 넉넉했습니다. 그러나 사탕을 사양한 것은 그 꼬마의 자존심이었습니다.
그 꼬마와 그늘에 앉아 잠시 프랑스어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니제르는 공용어로 프랑스어를 사용했는데, 꼬마는 어지간한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프랑스어를 구사했습니다. 다른 이야기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장래희망 이야기는 또렷이 기억납니다. 꼬마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우리 일행이 그동안 보아온 풍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픈 사람들, 실명 위기의 사람들을 고쳐주고 싶다는 것이었지요. 저는 그 꼬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안했습니다. 그들을 은근히 무시하고,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여겼던 속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한국 개신교 역사에선 1903년 원산부흥운동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100년 전 원산에서 감리교 선교사들이 성경공부를 하던 중 부흥이 부진한 원인이 바깥이 아니라 자신들의 교만에 있었음을 회개하면서 시작된 회개운동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3년 후 평양대부흥으로 이어졌지요. 당시 선교사들도 저처럼 비슷한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도 가끔 니제르의 그 꼬마 생각을 합니다. 벌써 18년이 흘렀습니다. 당시 열살쯤이었던 그 꼬마는 의사의 꿈을 이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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