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교회서만 57년… “교회는 더 겸손하고 청빈해야”
입력 2021.11.01 03:00
손인웅 목사가 전통 한옥을 개조한 덕수교회 영성수련원 '일관정'의 기도실을 안내하고 있다. 손 목사는 "한국 교회는 더 낮아져야 하고 기독선비정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1971년 3월, 부산 해운대로 신혼여행 갔던 신부는 귀경길 고속버스에서 추풍령까지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신랑이 해운대에 도착하자 “잠깐 기다리라” 하고 나가더니 4시간 만에 돌아온 것. 신랑은 손인웅 목사. 부산의 병원에 입원한 덕수교회 교인을 심방갔던 것. 신부(유인주 여사)는 “남편에겐 ‘교인이 1순위, 나는 평생 2순위로 살아야겠구나’ 생각했다”고 최근 발간된 손 목사 회고록에 적었다.
서울 덕수교회 손인웅 원로목사가 80세를 맞아 회고록 ‘집중 손인웅의 신학이 있는 목회여정’(전3권·대한기독교서회)을 펴냈다. 본인의 회고록과 신학자와 동료·선후배 목회자·신자·가족 등이 손 목사에 대해 쓴 글을 모아 덕수교회(김만준 담임목사)가 펴냈고, 종교개혁주일인 10월 31일 교회에서 출간 기념행사를 가졌다.
손 목사의 일생은 모태 신앙이 아닌 평균적 한국인이 어떻게 신앙을 받아들이고 목회자까지 성장했는지 보여준다.
손 목사는 1941년 경북 군위의 유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교회 종소리’에 이끌려 9남매 중 혼자 교회를 다녔다. 부친은 초등학교를 우등 졸업하는 그에게 지게를 선물했다. 가난한 형편에 진학 대신 농사를 도우라는 뜻. 그러나 소년 손인웅은 지게를 부숴버리고 고학(苦學)을 마다 않고 경북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장신대 신학대학원을 거쳐 목회자가 됐다.
덕수교회와의 인연은 신학생 시절 맺어졌다. 1946년 최거덕 목사가 설립한 덕수교회는 서울 도심의 연동·안동·묘동교회 등 ‘양반교회’의 전통이 이어지던 곳. 1964년 처음 덕수교회에 출석한 그는 교인으로 시작해 전도사, 부목사를 거쳐 1977년부터 2012년까지 2대 담임목사를 지냈고 이후 원로목사로 있다. 덕수교회 75년 역사 중 그는 57년을 함께하고 있는 것.
덕수교회 영성수련원 '일관정' 앞에 선 손인웅 목사. 전통 한옥을 개조한 일관정은 서양과 동양,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려는 덕수교회의 정신을 보여준다. /이태경 기자
손 목사는 그간 개신교계에서 ‘합리적·중도적 리더십’을 발휘해왔다. 대형 교회 목사가 아니었지만 개신교계에서 그의 행보는 굵고 컸다. 개신교가 성장을 좇던 1990년대 후반 고(故) 옥한흠 목사와 함께 교파를 초월한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를 설립해 교회 갱신·일치운동에 앞장섰고 다양한 연합기관 활동을 했다.
만 36세에 담임목사가 되면서 ‘당회(堂會) 만장일치 전통’을 세운 일화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당시 “연소한 목사가 연세 많으신 장로님들 모시고 목회를 시작하는데 장로님들이 다투시면 감당할 수 없다”고 호소해 만든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만장일치를 위해서는 극단적 주장은 서로 피하고, 의견이 갈리는 사안은 대화·설득·타협해야 한다. 그래도 만장일치가 되지 않으면 “1주일만 기도합시다” 하고 숙려 기간을 가졌다. 그는 만장일치 전통이 가능했던 이유로 “덕수교회의 기독선비 전통 덕분”이라고 했다. 이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교회는 1984년 중구 정동에서 성북동으로 이전한 직후부터 유치원, 어린이집, 복지문화센터를 열고 종교인연합바자회를 개최하며 지역사회를 섬기고 있다.
손 목사는 이번 회고록에서도 ‘기독선비정신’을 거듭 강조했다. 기독선비정신이란 ‘겸손한 성품과 올곧은 자세에서 뿜어나는 개혁·청빈정신’이다. 서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와 동양의 ‘청빈’ 정신의 조화다. “신앙이 삶과 연결되지 않으면 다 헛소리입니다. 믿는 대로 살아야지요. 기독선비정신은 스스로 겸손하고 청빈하면서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는 정신입니다. 흔히 크리스천이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이런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손 목사는 “지금 교인 수 감소에 코로나까지 겹쳐 한국 교회의 위기라고 한다”며 “성장보다는 성숙이 필요한 지금 한국 교회엔 기독선비정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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