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 송광사 주지 스님이 만든 ‘빨간 목탁’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입력 2021.11.10 00:00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이 도자기로 만든 '빨간 목탁'. 탁구공만한 미니어처 목탁이다. /송광사

멀리서 보면 구슬 같기도 하고, 작은 공 같기도 한 물건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서울 종로구 조계사 건너편 템플스테이 홍보관 1층엔 이런 ‘물건’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전시 작품은 ‘빨간 목탁’. 도자기로 구운 미니어처 목탁입니다. 호두알 혹은 탁구공만합니다. 26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불교문화상품 특별전’.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찰에서 만든 문화상품을 전시하는 행사인데요, 송광사에서 직접 만든 것입니다.

전남 순천 송광사 전경./송광사 홈페이지

보도자료를 보다가 ‘송광사 주지 스님이 만들었다’는 내용을 보고 살짝 놀랐습니다. 송광사는 국내 ‘3보(寶) 사찰’ 중 하나인 큰 절입니다. ‘3보’란 불교의 3가지 보배 즉 불(佛·부처님), 법(法·가르침), 승(僧·스님)을 가리킵니다. 불보(佛寶)사찰은 통도사입니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기 때문입니다. 법보(法寶)사찰은 해인사입니다. 부처님 가르침 8만대장경을 모셨지요. 송광사는 승보(僧寶)사찰입니다. 16국사(國師)를 배출한 사찰입니다. 근대 이후에는 효봉 스님을 비롯해 구산 스님, 법정 스님이 수행한 사찰이지요. 강원(講院)·선원(禪院)·율원(律院) 등을 갖춘 종합수도원인 총림(叢林)이기도 합니다. 이런 큰 사찰 주지 소임은 보통 바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도자기 목탁을 직접 빚고 구웠다니 내심 놀랄 수 밖에요.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이 '빨간 목탁'을 만드는 모습. /송광사

기억을 더듬어보니 몇 달 전 송광사가 발행하는 사보(寺報)에서 이 작품들을 본 기억이 났습니다. 당시 사보에는 이 목탁들이 탄생한 배경 설명은 없이 사진만 실렸는데요. 사진만으로도 산사의 정취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자공 스님은 쑥스러워하시며 목탁 탄생 배경을 설명하시더군요. 시작은 선물용이었답니다. “송광사를 찾는 분들이 많은데, 참배하거나 사찰 구경만 하고 찻집에서 차 마시고 그냥 돌아가시는 게 좀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기억에 남을 선물을 궁리하다 목탁을 떠올렸습니다.”

서울 종로구 조계사 맞은편 템플스테이 홍보관에서 전시 중인 '빨간 목탁' 일부. /불교문화사업단

차(茶)는 이미 시중에서 판매되는 것도 많았고, 염주 등 불구(佛具)는 중국산이 대부분이라 사찰 특유의 맛을 느끼기 어렵다고 생각했지요. 사실 자공 스님은 10여년 전부터 사찰에 공방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느꼈답니다. 스님과 신도들이 함께 팔 걷어부치고 뭔가를 만들어 나눈다면 일단 사찰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겠지요. 그 가운데 서로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고 사찰에 대한 애정도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지요. 처음 구상은 접시나 그릇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미 세상에 그릇 종류는 많아서 목탁을 떠올리게 됐답니다. 목탁은 목어(木魚)에서 비롯된 것으로 항상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처럼 늘 정진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점도 감안했답니다.

 

“불교 국가들은 모두 목탁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다녀보면 우리 한국의 목탁이 크기나 형태도 적당하고 아름답고 소리까지 맑습니다. 그래서 목탁을 만들자고 결정했지요.”

송광사 '빨간 목탁'을 줄에 매달아 전시한 모습. /송광사

비어있던 창고를 개조해 공방과 가마를 만들었지요. 시행착오는 무수했답니다. 스님도 그 이전엔 도자기 작업을 해본 적이 없었다니까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러나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고 오랜 노력 끝에 ‘빨간 목탁’이 완성됐습니다. 목탁 채도 있습니다. 세 번씩 칠하고 세 번씩 구워낸답니다. 유약을 발라 구워서인지 소리가 영롱하더군요. 실제 미니어처 목탁의 색깔은 흰색, 노란색, 파란색 등 다양합니다. 그런데 좍 펼쳐놓고 신도들에게 무작위로 고르라고 했더니 빨간색이 가장 선호도가 높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름을 ‘빨간 목탁’으로 지었다지요. 송광사는 ‘빨간 목탁’을 상표권 등록도 했고, 특허까지 출원했다고 합니다. 유사품이 난립하면 송광사만의 특색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개별 판매도 하는데 송광사 영농협동조합법인 수익사업이기도 하답니다. 작품이 완성되고 지난 9월엔 사보 ‘송광사’에 사진을 먼저 공개한 후 이번 템플스테이 홍보관 전시를 통해 서울 불자(佛子)들에게도 공개하게 됐답니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그 바쁜 큰 사찰 주지가 도자기 구울 시간이 있느냐’고 여쭸습니다. 우문에 현답이 돌아오더군요. “주지 소임이 바빠서 바깥 출입을 하기 어렵다보니 절 안에서 시간이 난다”고 했습니다. 송광사는 아침 예불 후 공양(식사) 때에는 사찰 내 스님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함께 발우공양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규율이 엄격한 것이지요. 그런 와중에 짬이 날 때마다 공방에서 도자기를 빚고 굽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신도님들이 함께 작업을 하지요. 자공 스님은 “신도님들이 빨간 목탁에 호응을 보내주셔서 한편 놀랍고 한편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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