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석유화학 프로젝트

대망의 석유화학사업의 진수인 나프타 분해공장 건설을 위한 타당성조사를 실시했다. 플라스틱 가공업체를 필두로 도매상과 소매상, 동대문시장 상인, 고무신 장수까지 만나며 몇 달을 돌아다녔던가? 석유화학 사업은 우리의 꿈이요 희망이며, 그 자체가 긍지요 포부였기에, 사무실에선 밤마다 이력이 난 대로 발가벗고 일을 했다. 통행금지에 쫓겨 늦은 밤 시간에 헤어질 때 인사는 “내일 맑은 정신으로 일합시다.”로 “퇴근합시다.”나 “집에 갑시다.”를 대신했다.

어느 날은, 외국 손님을 공항에서 맞아 오라는 지시를 받고, 외빈용 승용차로 모셔 오던 길에 그 외국인이 묻기를,

“김 선생 차는 없소이까(Don’t you have a c ar, Mr. Kim?)” 하길래,

“예, 아직 내 차는 없소이다.(Yes, I don’t have a car, yet.)” 했더니, 그

외국인의 눈이 화등잔만큼 커졌다.

“아니, 뭐라고요?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것이지, 처음엔 있다고 해놓고 나서 결국 없다는 것은 무슨 말이요? 누굴 놀리는 거요?” 하며 자못 험악하게 나왔다.

‘허, 참, 내가 언제 있다고 했다가 없다고 했지?’ 하고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차, 실수했구나.’ 싶었다.

Yes면 Yes고, No면 No지, Yes, I don’t.라 했으니 혼란을 자초한 것이

로구나. 즉 “(No, I don’t have a car, yet.)”라 해야 맞는 것을......

“미안하외다. 외국어가 좀 서툴러서.”

나는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이렇듯 수많은 우여곡절과 웃지 못할 일들을 겪으면서 타당성 조사보고서와 사업계획서를 어렵사리 정부에다 제출하였다.

그러나 아! 하늘도 무심했다.

진땀 흘린 보람도, 남모르게 코피를 쏟은 보람도, 몇 밤을 하얗게 밝힌 보람도 없이 제2정유공장과 나프타 분해공장의 실수요자는 다른 업체로 지정되었다는 정부의 발표였다.

그것이 병오·정미 이태에 걸쳐 연달아 일어났다. 돌아가신 현암 회장님을 비롯한 임원들과 우리 실무진들의 실망은 너무도 컸다. 하늘이 무너진 듯하다고나 할까? 목이 막혀 말도 못하고, ‘얼음에 자빠진 소’ 모양 넋을 잃었다. 윗분들은 우리의 등만 어루만지시며 인왕산 위로 떠가는 흰 구름을 응시하는 듯했으나 그분들 눈에도 이슬이 맺혔던 것 같다. 누구도 누구를 위로하거나 격려해 주진 못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입을 연다는 것이 큰 죄를 저지르는 듯한 분위기는 한참동안 계속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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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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