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플라스틱 공장
그러던 어느 날 진짜 ‘나일론’인 플라스틱(PVC)에 착안했다. 지금까지 계속 시간에 쫓기기만 하며 조사한 보고서들은 별 쓸모없는 것들이었나 보다. 국가 사회에 기여하며, 수익성 있는 성장 사업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허투루 맴을 돌았을 뿐이었다.
그로써 한국화약은 지금의 한화기계 전신인 그 당시의 신한베아링을 인수하기에 앞서, 석유화학에 대한 구상의 윤곽을 잡기 시작했다. 서울시청 앞 본사 옥상과 인천 화약공장 연구과에서는 청사진 틀에 매달려 연일 수많은 청사진을 구워냈다. 그 많은 청사진 가운데 1960년대 중반, 하나의 뚜렷하고 볼품 있는 청사진 한 장이 구워져 나왔다. 이름하여 ‘석유화학공업 계열도’. 이 용어는 지금도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정유 공장-나프타 분해 공장-에틸렌-프로필렌-부타디엔-BTX, VCM-PVC-폴리에틸렌-합성고무-합성세제-합성섬유…… 등등 생활과 직결되는 각종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매우 거창한 사업이었다.
계열화된 사업. 우리 국내는 물론 세계와 발맞출 사업. 그림으로 그려도 몇 아름드리 큰 나무 둥치의 무지하게 큰 거수(巨樹)의 청사진을 놓고 모두들 희망에 벅찼으며, 나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마치 소풍 가기 전날 밤의 소년처럼 희열과 설렘 속에 잠겼다. ‘고기는 잡지도 않고 한 마리 반씩 가른다’듯이, 청사진만 보고도 보람에 찼다.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온몸 가득히 일고 있었다.
1960년대는 석탄에서 석유로 옮아가는 시대였다. 에너지는 물론 화학공업 원료까지도, 국내 정유산업이 겨우 태동하여 SK울산정유공장이 64년 봄부터 일간 3만 5천 배럴을 가동하고 있을 때, 한국화약은 방대한 석유화학 사업계획을 단계적으로 추진키로 하여, 우선 PVC 공장 사업 계획부터 작성했더니, 드디어 위에서 청신호가 떨어졌다. 아! 얼마나 기다렸던 푸른 신호냐! 소리 없는 환성을 지르며 공장 건설 계획에 몰입했다.
한화석유화학의 진해 PVC공장 건설 사업을 추진할 그때는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었지만 매일 밤 11시 이전에 사무실의 전등이 꺼진 적이 없었다. 지금의 시청앞 더프라자호텔 자리에 있던 옛 한국화약 사옥 6층, 기획실은 신이 나서 온통 열기로 가득 찼다. 더위에 지친 우리는 냉수를 떠다가 발을 담그기도 하고, 선풍기조차 귀하던 시절이라 창문은 모조리 떼어냈었다. 연신 세수를 하고 냉수를 마셨으나 열기는 쉽사리 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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