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시계

회고록 2019. 3. 13. 01:24

손목시계

 

 

우리 신갈 집에는 지금 시계가 몇 개인지 나는 잘 모른다. 괘종시계 하나(병수가 태어나고 산 것이니 50년이 가까워오는데 종소리를 아무 때나 치기도 한다), 탁상 자명종 시계 4, 손목시계 2, 각종 계산기 속의 시계는 몇 개인지조차 모르고, VCR에도 있고, 휴대 전화기 속의 시계 등등 아주, 아주 많다. 각종 가전제품에는 곳곳마다 시계가 달려 있으니까. 차라리 나는 귀찮아서 손목시계는 차고 다니지도 않는다.

 

 

70년 전에는 시계라는 것이 대단히 귀한 물건이었다. 울산 숙부(우봉)가 차고 다니던 회중시계가 하나 있었긴 하지만…….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경상북도 도지사 상으로 타온 자명종이 우리 집의 첫 번째 시계였다. 그 뒤로는 시계가 차츰 흔해져서 더러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기도 했지만, 미국으로 출장 갔던 길에 월천 어른에게 생신 선물로 손목시계를 하나 사다 드리니까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으니 그때가 아마도 70년대 말이 아니었나 싶다.

 

 

그 시절에는 결혼을 할 때면 신부 집에서 손목시계 하나쯤 신랑 될 사람에게 선물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그때의 처갓집 형편으로는 그럴 사정이 되지 못하였나 보다. 장인 영감이 몇 번씩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하는 통에 집안 살림이 엄청 줄어들어 있었으니까. 양복은 새것을 한 벌 얻어 입었는데 손목시계는 없었다.

처갓집이고 우리 집이고 간에 겨우 형식만 갖춰서 결혼식만 치르면 될 그럴 형편이었지, 뭐 혼수 갖추고 예단 차리고 할 그런 처지가 아니었다. 반면 나는 신부에게 시계 하나를 선물했다. ‘벨포드라는 것으로 좁쌀만 한 보석(다이아)이 박힌 고급스런 것으로 말이다. 말하자면 신부에게 시계를 사 줌으로써 내가 대리 만족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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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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