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귀 뒤를 꼭 씻으라 하셨네

박찬용 칼럼니스트·전 ‘에스콰이어’ 에디터

입력 2020.12.28 03:00

내가 어릴 때 아버지는 나에게 커서 뭐가 되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성공하라거나 돈을 많이 벌라는 말은 전혀, 공부를 잘하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 한번은 내가 막막해서 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커서 무엇이 되면 좋을지. 아버지는 왜 그런 걸 자기에게 묻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잠깐 멈췄다가 대답했다. “좋은 사람이 돼라.” 그 후로 아버지에게 다시는 내 진로를 묻지 않았다.

/일러스트=양진경

아버지는 다른 면에서 혹독했다. 나는 동네 어른과 친척에게 무조건 인사를 해야 했다. 어릴 때는 모르는 어른에게 인사하기 부끄러울 때가 있다. 그래서 머뭇거리면 아버지는 어디서든 너무하다 싶을 만큼 큰 소리로 나를 꾸짖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굉장히 혼났다. 어릴 때 자잘한 약속을 어기기도 하지만 꾸지람에 예외는 없었다. 그리고 늘 운동을 시켰다. 턱걸이나 등산처럼 혼자 하는 체력 단련을, 미취학 아동이 좋아하기 쉬운 종목은 아니었다.

우리는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본인 방침을 설명하지 않는 성격이고 나는 납득되지 않으면 하지 않는 성격이다. 성격이 비슷해도 현대 한국의 부모와 자식은 멀어질 이유가 많다. 정치, 역사, 결혼, 출산, 육아, 삶의 방향, 나이든 부모와 젊은 자식의 의견이 갈릴 화제를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 거기 더해 부자지간만의 미묘한 긴장도 있는 것 같다. 아들이라는 수컷은 커갈수록 자기 영역이 생기며 아버지 수컷과 각을 세운다. 내게 아버지는 무작정 내 구역으로 들어와 큰소리를 치는 사람으로 보였다. 아버지와의 대화가 사라져 갔다.

“가정교육은 그런 게 아니야”라는 말을 들은 몇 년 전 아버지를 다시 봤다. 좋은 자녀 교육이라는 주제로 가족끼리 이야기할 때였다. 아버지는 나를 가리키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얘가 잡지 기자가 될 거라고, 당신과 내가 예상이나 했어? 자녀의 삶은 부모가 정해주는 게 아니야. 부모가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건 사회생활을 해 나가는 최소한의 매너라고. 인사 잘 하고, 약속 잘 지키고, 거짓말 안 하고, 깨끗하게 하고 다니고, 아이를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만들고. 그게 부모의 일이야.” 그런 거였나. 약 30년의 궁금증이 그때 풀렸다.

 

그 이야기를 듣고 오랫동안 잊었던 게 하나 더 떠올랐다. 아버지는 늘 세수할 때 귀 뒤까지 씻으라고 말했다. 귀 뒤를 만져 보고 물기가 없으면 다시 씻고 오게 했다. 어른이 되어 보니 그것도 유용한 생활 상식이었다. 흔히 ‘홀아비 냄새’ 라고 하는,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어도 맡고 나면 별로다 싶은 남자 냄새가 있다. 그 냄새가 풍기는 부분 중 하나가 귀 뒤다.

좋은 가정교육이 무엇일까. 나는 가정에서만 할 수 있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홈스쿨링은 가정교육이 아니라 교육기관의 일을 가정이 대행하는 것이다. 학교도 단순 학업 수련 기관이 아니다. 의무교육의 핵심은 학교라는 사회에서 익힐 수 있는 사회인의 보편 규칙 숙달이다. 가정에서는 사회인의 기본 규칙 중 학교 교육으로는 한계가 있는 걸 가르쳐야 균형이 맞는다. 지금 와서 보면 아버지가 내게 철저히 가르친 것도 그런 것들이었다. 인사하기, 약속 지키기, 건강 관리 개념의 운동, 그리고 귀 뒤 씻기.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적 지면에 적는 이유는 둘이다. 하나, ‘밀레니얼’이라 불리는 내 세대가 기성세대를 부정한다는 오해를 풀고 싶어서다. 고전과 재고는 다르다. 기성세대의 말이라서가 아니라 업데이트가 안 된 말이라 통하지 않는 것이다. 나와 내 주변 젊은 친구들은 맞는 말에 늘 귀를 기울인다. 둘, 귀 뒤 씻기라는 에티켓을 알리고 싶어서다. 악취를 없애는 것이 좋은 향기를 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아버지는 나에게 별 말이 없고 우리는 별로 가깝지 않으며 나는 아버지를 잘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히 나이가 들며 조금씩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나는 귀 뒤를 잘 씻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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