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지에 된 재수생 1
1957년 경주공업고등학교 졸업반 때의 일이다. 그땐 내가 전교 수석인 특대생으로 장학금을 받고 있었기에, 그해 봄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과로 진학할 생각이었다. 서울 동숭동에 소재한 서울대학교 본부에 등기우편으로 입학원서를 반송우표까지 넣어서 신청하였다.
그런데 입학원서 마감일이 코앞으로 가까워 오는데도 원서 용지가 도착하지 않았다. 어찌어찌 서울대학교 본부에 알아봤더니, 등기로 보냈으니 곧 도착할 것이라고 하여 차일피일 속수무책으로 기다리기만 하다가 그만 꼴깍 입학원서 마감일에 임박하고 말았다. 요즘 같으면 KTX라도 타고 당일치기로 서울까지 뛰어갔다 올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만 해도 서울로 가는 것이 요즘으로 치면 비행기를 타고 리우 데 자네이루쯤 가는 것과 맞먹을 만큼, 시간도 걸리고 촌놈에게는 돈도 엄청나게 드는 일이라 감히 엄두도 못 내었던 것이다.
그리고 순진하게도 등기로 보낸 입학원서가 중간에 없어지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였기에,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리다가 실기(失期)를 하고 말았다. 순진하기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고3 담임선생은 물론 부모님을 비롯해 주위 사람들조차도 마찬가지였으니, 어느 누구도 서울로 당장 뛰어가서 입학원서를 하나 더 구해오는 것이 상책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니, 지금 생각하면 모두들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그 시절에는 누구나 다 기다리면 되는 줄 알았었다. 체신부가 운영하는 우편제도인데. 서민이 정부를 못 믿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겠지만, 서울서 보냈다는 입학원서가 도착하지 않았으니 뭐가 어떻게 된 노릇인지 알기 위해서, 힘든 부모님의 없는 주머니를 털어서 뒤늦게 서울로 올라갔다. 어린 마음에 ‘아무래도 서울대학교에서 원서를 보내지 아니한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고. 경주 촌놈이 어찌어찌 동숭동에 있던 서울대학교 본부 교무처인가를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당신들의 잘못으로 시험을 못 쳤으니 ‘서울대학교 입학허가’를 내 놓으라고 떼를 써볼 작정까지 하고서 말이다.
그런데, 교무처에는 나의 요청을 받은 등기와 입학원서를 보냈다는 우편 등기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거기 적힌 것을 가지고 서울 혜화동 우체국에 가서 물어보니 몇 월 며칠에 원서용지를 나에게 보냈다는 기록이 확실하게 있었다. 경주로 내려와서 경주 우체국에 알아봤더니 해당 등기 우편물을 제대로 배달해 전했다는 것이다. 그럼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전한 것이냐? 고 따져 봤더니, 몇 월 며칠 경주고등학교 이종용이란 사람에게 전했다는 수령인 도장이 찍혀 있었다. ‘경주공고’가 아니라 ‘경주고등학교’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 그래 경주고등학교에 가서 이종용 선생이란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그날이 마침 일직이라서 우편물을 받아서 인계했다는 것이다. 우체부(우편집배원)가 주는 대로 받았을 뿐 그것이 경주공고로 가는 것인지 어떤지는 확인한 바 없다고 한다. 그 뒤로는 누구에게 줬는지, 어쨌는지는 모른다는 식이었다. 참으로 허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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