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서 神性 발견하라는 성경 말씀,

禪師들 가르침도 같더군요"

'예수처럼 부처처럼' 낸 이영석 신부, 불교철학으로 석·박사 학위… 성경과 '무문관' 비교하며 묵상
  • 김한수

    발행일 : 2017.11.17 / 문화 A23 면


     예수는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대주라고 했다. 그러면서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다. '따귀 일화'는 불교에도 있다. 중국 송나라 때 황벽과 스승 백장 사이에 벌어졌다. 여러 사람이 모인 가운데 갑자기 황벽이 스승의 뺨을 철썩 때린 것. 이때 백장 스님은 손뼉을 쳤다. '따귀'는 같은데 반응은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천주교 예수회 이영석〈사진〉 신부는 "둘이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유는 이렇다. 내 뺨을 때리는 사람은 원수다. 역설적이지만 원수는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예수가 다른 뺨을 대라고 한 것과 백장 스님이 손뼉을 친 것은 거울에 대한 감사다.

    최근 출간된 이 신부의 '예수처럼 부처처럼'(성바오로출판사)은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가르침을 교직(交織)한다.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불교 화두(話頭)를 떠올린다. 이 책은 중국 송나라 때 선승인 무문 혜개 선사의 '무문관'에 나오는 화두 48개를 성경 내용과 교차 묵상한 내용이다. 진리를 묻는 제자들에게 꽃 한 송이 들어 보이거나, "똥 막대기" "뜰 앞의 잣나무"라고 알쏭달쏭하게 일갈한 선승들의 세계를 그리스도교적으로 해석했다.

    이 독특한 작업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 신부의 이력 덕택이다. 직장 생활을 하다 1996년 서른 나이에 늦깎이로 예수회에 입회한 이 신부는 동국대에서 불교철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논문을 쓰다가 머리를 식힐 때 그가 읽은 것은 '벽암록' '경덕전등록' '무문관' 등 선승들의 화두를 적은 책. 묵상을 하다 떠오른 생각을 그때그때 일기로 적었다가 이번에 책으로 엮었다.

    예수회 특유의 '영신(靈身) 수련' 방법도 불교 공부에 도움이 됐다. 영신 수련은 복음서의 구체적 상황 속에 자신을 대입시키며 영성을 키운다. 스스로 예수, 제자 혹은 관찰자가 되어 그 상황을 상상해 보는 것. 이 신부는 화두를 주고받는 당·송 시대의 선사와 제자가 되는 상상을 하면서 수행했다. 이렇게 공부하면 성경 속 일화도 내 이야기가 되고, 알쏭달쏭한 화두도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스토리'가 된다.

    책을 보면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문법은 다르다. 그러나 가르침엔 공통점이 많다. 그리고 양쪽 공부를 하면 영적으로 풍성해진다"는 이 신부의 말이 이해된다. 덕택에 이 책은 그리스도교에 관심 있는 불자(佛子), 선(禪)불교가 궁금한 그리스도인에겐 상대를 이해하는 훌륭한 소개서 역할을 한다.

    성경과 화두, 양쪽을 보면서 이 신부가 느낀 공통점은 "일상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불성(佛性)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가 눈먼 이의 눈을 뜨게 해주고 "가거라"고 하거나, 진리를 묻는 제자에게 조주 스님이 "아침 죽을 먹었으면 발우(밥그릇)를 씻어야지"라고 한 것은 모두 일상을 제대로 챙기라는 뜻이다. 일상에서 하느님과 불성을 만나기 위해선 중요한 조건이 있다. 지금까지의 틀을 깨야 한다. 헤세의 '데미안' 식으로 말하면 '알'을 깨야 한다. 이 신부는 책에서 "'틀'을 부수고 넓히면 맘껏 뛰어다닐 수 있는 '뜰'이 된다"고 적었다. 틀을 깰 때 비로소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이해를 돕는 비유도 풍성하다. 어린 시절 수제비를 만들기 위해 밀가루 반죽을 젖은 헝겊으로 쌌던 경험을 예로 들면서 "마음은 본래 말랑말랑하지만 젖은 헝겊으로 잘 감싸 두지 않으면 곧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 버린다. 헝겊이 젖은 이유는 하느님의 눈물, 곧 돌처럼 단단해진 마음이 다시 부드러워지기를 기다리다 흘린 눈물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신부는 "불교 공부를 시작하던 때 운문 선사의 '날마다 좋은 날'이란 화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일상 속에서 행복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Posted by 사투리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