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사세요" 악마가 속삭였다…
아메리칸 드림은 악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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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보유 높이려 서브프라임 남발, 신용평가 회사는 월가 눈치 평가
그들이 벌인 합법적인 불공정… 전 세계가 분노
미국 저널리스트인 저자들이 지금 월가를 비롯해 세계를 휩쓸고 있는 젊은이들의 분노의 원천인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전말을 정리했다. 방대한 인터뷰와 자료 조사를 통해 완성된 책에는 '아메리칸 드림=내 집 마련'이란 목표를 포기하지 않은 정부, 금융상품 개발자, 신용 평가기관, 월가에 두루 만연했던 과도한 경쟁과 탐욕, 부패 그리고 막연한 낙관주의가 어떤 비극을 불러왔는지 상세히 적혀 있다.
◇내 집 마련 꿈이 악몽으로
"나는 역사상 가장 큰 '폭탄 돌리기 게임'을 만들 생각이 없었지만,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다."(27쪽)
2008년 금융위기가 미국과 세계 경제를 휩쓸고 간 후 루이스 라니에리는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30여년 전 주택저당채권 담보부증권(MBS)라는 금융상품을 만들어낸 주인공 중 한 명.
1990년대 미국 정부는 주택보유율을 높이고자 했다. 1980년대 65.6%였던 보유율이 1991년 64.1%로 떨어지자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향후 6년간 주택 보유 가구 수를 800만 가구 늘리겠다며 "주택을 구매할 현금이 부족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금융전략"을 옹호했다. 서브프라임 대출업체들이 바라던 일이었다.
◇신용등급을 낮춘다고? 다른 평가회사로 간다
정부의 방침이 서자 업체들 간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고 사태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월가가 빠질 리가 없다. "대출채권을 매입해 증권화하고, 가장 위험한 대신 가장 기대수익률이 높은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채권을 매입하고자 했다."(215쪽) 월가의 금융회사들은 대출금을 조기 상환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는 조항까지 계약서에 넣으며 대출을 남발했다.
여기에 2000년대 이후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 피치 등 3대 신용 평가회사 간의 무한 경쟁이 겹쳐졌다. 평가 대상으로부터 비용을 받는 평가사가 경쟁을 벌일 때의 결과는 악몽이다. 한 전직 간부는 1997년 입사 무렵 애널리스트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이 신용등급을 잘못 매기는 것이었다면, 금융위기 무렵엔 시장점유율 하락과 수익 감소를 초래했다는 지적을 받고 해고당하는 것(188쪽)이었다고 실토했다. 한 스위스 은행은 신용평가 등급을 낮출 예정인 평가사에 전화를 걸어 "다른 회사와 거래하겠다"고 협박했다. 거품의 절정에서 금융회사들은 리스크 관리 매니저들을 뒷방으로 몰아냈고 장부 조작도 서슴지 않았다. 돌리던 폭탄은 결국 터질 수밖에 없었다.
저자들은 에필로그에서 "금융위기 동안 벌어진 상당수의 일들은 비도덕적이고, 부당하고, 비겁하고, 망상에 사로잡힌 행동이었지만 엄밀히 말해 범죄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후 미국 정부의 대책에 대한 평가는? "새로운 법률은 불공정을 시정할 수도 없을 것이고, 월스트리트에 도덕적 목적의식을 심어주지도 못할 것이다."(527쪽) 왜 미국 젊은이들이 월가로 뛰쳐나오는지 배경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김한수 기자
조선일보 2011.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