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사투리버전 ‘어린왕자’ 유럽 한류팬, 교포에게 인기라는데

런던=이해인 특파원

입력 2020.12.17 14:12

영국 런던 대학생 라헬(30)씨는 최근 한국어 모임에 나갔다가 사투리로 번역된 어린왕자를 접하고 경상도 사투리에 푹 빠졌다. 4년 전 충남 아산시 한 고등학교에서 1년간 영어 강사를 하며 한국어와 문화를 익힌 그는 16일(현지 시각) 본지와 만나 “서울말이 아닌 경상도 사투리는 이번에 처음 접했는데 단어가 매력적”이라며 “영국 영어에도 지역별로 다양한 사투리가 있는데, 한국어 사투리를 배워가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유럽에서 출판된 경상도 사투리 버전의 어린왕자 책 표지. 발간 6개월 만에 초판 300부가 품절돼 2쇄를 준비하고 있다. /틴텐파스

유럽에서만 300부 한정으로 출간된 경상도 사투리 버전의 어린왕자가 해외 한국 팬들과 재외동포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외국인들은 “색다른 사투리를 배우는 맛이 있다”며 즐거워하고 재외동포들은 “코로나에 오랜 기간 한국에 못 들어가는 상황에서 고향의 정겨운 언어로 된 책을 읽으니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어린왕자 속 문장들은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재탄생했다. “4시에 니가 온다카믄, 나는 3시부터 행복할끼라. 4시가 되모, 내는 안달이 나가 안절부절 몬하겠제” “사막이 아름다븐 기는 어딘가 응굴(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데이” “내 비밀은 이기다. 아주 간단테이. 맴으로 봐야 잘 빈다카는 거” 같은 식이다.

 

이 책은 싱가포르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작가 최현애(37)씨가 번역해 지난 6월 내놨다. 코로나로 고향 포항에 들어가 있는 최씨는 본지 통화에서 “해외에서만 출간했는데 이렇게 반응이 뜨거울 줄 몰랐다”며 “초판 300부가 매진돼 2판 인쇄를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최씨는 SWF(싱가포르 작가축제)를 통해 어린왕자를 각국의 독특한 언어로 출간하는 독일 출판사 틴테파스 발행인을 만나 인연을 맺고 사투리 버전의 어린왕자를 출간하게 됐다.

경상도 사투리 버전의 어린왕자를 내놓은 작가 최현애씨. /최현애씨 제공

사투리 번역본에 대한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특히 경상도 출신 교포들이 표현을 지적하는 일이 잦다고 한다. 최씨는 “책을 보고 ‘후딱’이 맞느냐, ‘퍼뜩’이 맞느냐, ‘애린 왕자’ ‘에린 왕자’냐 등 사투리 번역이 맞네 틀렸네 하는 지적은 번역자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며 “사투리가 살아있는 언어가 된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경상도 사투리판 어린왕자는 한국에서도 지난 15일 출간됐다. 최씨는 “경상도 사투리뿐 아니라 충청, 전라, 제주 등 8도 버전으로 내놓을 계획”이라며 “사투리가 열등한 언어라기보다는 하나의 문화를 담는 그릇으로 이해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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