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벌' '시절' 소리 듣는 당신은… '냅버리구' 싶은 사람이에유
조선일보
예산=백수진 기자
입력 2019.11.14 03:00
[조선일보 100년 기획 -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사라져가는 충청 말 1만개 담은 '예산말 사전' 집필한 이명재 시인
"우리말이 빈곤하고 목마른 지금… 충청·경상도 우물서 끌어와야죠"
'개 혀?'
'개고기 먹을 줄 아느냐'를 단 두 글자로 줄여버리는 충청도식 사투리가 한동안 우스개소리로 떠돌았다. 10년 넘게 예산 말을 연구해 온 이명재(57) 시인은 '개 혀?'에 숨은 뜻이 있다고 말한다. "충청도 사람이 '개 혀?'라고 묻는 건 질문이 아니에요. 자네가 참 좋다는 고백이지요. 내가 너에게 보신탕을 사줄 의향이 있으니 같이 먹으러 가자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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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시인은 “한번은 ‘국어보다 영어를 잘하는 법!’이라는 학원 광고를 보고 자존심이 팍 상했다”면서 “영어나 외래어가 들어오면 습관적으로 우리말로 바꿔보려 한다”고 했다. /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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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시인은 예산에서 태어나 대학 시절 말고는 쭉 예산에서만 살아온 토박이다. 시인·수필가로 글을 쓰며 예산에서 쓰는 방언 1만2000개를 수록한 '예산말 사전'을 집필했다. 그는 "1960~70년대 도시화와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농촌에서도 획일화된 표준어 교육을 받고 지역 말은 사투리란 이름으로 격하됐다"면서 "너무나 달라진 말들 때문에 어르신들이 소외되고 고향 색채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대표적인 예가 '개갈나다'란 단어다. 옛날 농촌에선 논둑에 난 구멍을 막는 보수 작업을 '개갈'이라고 했다. 도시화하면서 서울에선 진작 사라졌고, 농촌에서도 기계로 논둑을 정비하면서 단어 뜻이 변했다. 요즘은 "개갈난다"고 하면 잘 정돈됐다, "개갈이 안 난다"는 마무리가 잘 안 됐다는 뜻이다. "장사 좀 되남?" 하고 물을 때 "아휴…. 개갈 안 나. 개갈 좀 나야 헐 틴디"라고 답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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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시인은 "'개갈'은 한 세기 전만 해도 쓰였다가 지금은 없어진 말"이라며 "이런 말들이 살아나면 굳이 외래어를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우리말이 빈곤할 때 외래어가 들어와요. 그럴 때 지역으로 뻗은 뿌리들이 큰 힘이 돼요. 국어가 목이 마를 때 경상도 우물에서 끌어오고 충청도 우물에서 끌어오는 거죠."
사전을 집필할 때는 표준국어대사전이나 다른 지역 방언 사전부터 펼쳐본 뒤 수록 단어들을 자신이 아는 충청 말로 바꿔본다. 모르겠을 땐 경로당 어르신들을 찾아다닌다. 그는 "어르신에게 옛말 이야기를 10분 들으려면 3년은 놀아드려야 한다"면서 "어린 시절 자치기나 장치기 놀이 하던 얘기를 꺼내면 그때 쓰던 사투리부터 당신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썼던 말들이 튀어나온다"고 했다.
장치기는 지팡이처럼 생긴 '장'을 들고 공을 치는 놀이. 충청도에선 장치기에서 위험하게 장을 높이 쳐드는 반칙을 '꼰장'이라 불렀다. 여기서 의미가 확장돼 훼방이나 억지를 부릴 때 '꼰장부린다'고 한다. "쟤는 뻑하믄 꼰장을 부리닝께 우덜찌리만 놀자!"
똑같은 말이지만 충청도에선 다른 뜻으로 쓰는 단어도 많다. '여벌'은 입고 남은 옷이나 필요 없는 옷을 뜻하지만, 충청도에선 함께 일하는 데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을 칭한다. "그 여벌은 냅버리지 않구 뭐더러 데꾸 댕기는 겨?" 계절이나 시기를 뜻하는 '시절'도 충청도에선 조금 모 자란 듯한 사람을 밉지 않게 놀리는 말이다. "예이, 시절아. 밥은 먹구 놀란 말여."
그는 재미난 충청 말로 '끄스렁키'를 꼽았다. 들에서 흔히 자라고 뾰족뾰족한 가시가 달린 환삼덩굴을 '끄스렁키'라 부른다. "끄슬다는 까끄럽다는 뜻이죠. 전국의 들판을 덮고 있는데 '환삼덩굴'이란 말은 좀 어렵지 않은가요. 끄스렁키 같은 말은 다른 데 없는 충청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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