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소리 효과음의 오용 사례

김 주석

1. 들머리

전해 내려오는 속담 가운데 ‘고사리도 꺾을 때 꺾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 바, 이는 적절한 시기와 순리 및 조화를 지적하는 말이다. 자연계의 변화를 지켜볼라치면 언뜻 보기에는 매우 무질서한 듯하나, 산새라 할지라도 그것들이 찾아와서 지저귀다가 번식을 끝마친 뒤 되돌아가는 시기에는 엄격하리 만큼 정연한 질서가 있다.

TV드라마는 금세기 예술의 총아로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안방에서 손쉽게 문화적 체험을 누릴 수 있게 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TV드라마는 시각적 내용인 ‘그림’과 청각적 내용인 ‘소리’를 과학적인 기자재를 동원하여 감동 있는 예술작품으로 제작하는 시청각물이다. 그러므로 TV드라마의 그림과 소리는 자연의 순리를 좇아 일치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그렇게 해야만 예술성도 높아지고 시청자의 공감도 더욱 넓고 깊게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TV드라마에 나오는 그림과 소리는 과연 일치하고 있는가? 얼마만큼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또 얼마만큼 상호 보완적인가? 방해요소는 없는가?

예컨대 공식 관측기록상 7월 10일 이후에라야 울기 시작하는 말매미를 자막으로 분명히 날짜까지 밝힌 6월 23일에 함부로 울게 하는 등의 오류를 허다하게 발견할 수 있는 바, 이래도 되는 일인가? 이건 바로 소살[牛肉] 떼어다 말살[馬肉]에 붙이는 격이다.

이 글에서는 ‘그림’과 ‘소리’의 부조화 가운데 ‘배경효과음의 오용’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이 글은 KBS 1 TV의 TV문학관 총 123편 가운데 ‘아저씨의 훈장’ 편부터 ‘수초의 노래’ 편까지 2년여에 걸쳐 방송된 100여 편과 그 외 한두 프로그램에서 채집한 동물소리 효과음의 내용과 중앙기상대의 공식기록 및 필자의 동물관찰 기록을 비교 분석한 것으로 그 가운데 효과음으로 쓰인 동물소리의 오용 사례를 지적하고 그 개선 방안을 모색한 것이다.

여기에서 ‘TV문학관’을 주된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 프로그램이 TV 프로그램의 대표라고 볼 수 있으며, 특히 예술성 높은 문학작품을 영상화시킨 프로그램으로서 효과음의 중요성도 그만큼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대가 아주 다양해서 그에 따른 효과음이 많았다는 점도 고려되었고, 또 여러 TV드라마를 전부 검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주된 대상으로 국한시킨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은 ‘TV문학관’ 이외의 모든 TV드라마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으로 확대해석해도 무방하리라고 본다.

2. 효과음의 성격

2.1 효과음의 개념

TV드라마는 현실을 모방하지 않고 그것의 특별한 면만을 선택적으로 변조하여 조명함으로써 새로운 인식 세계를 창조하는 종합예술이다. TV드라마의 청각적 내용은 말(대사)과 음악 및 효과음(Sound Effects)의 3대 부문으로 나눌 수 있으며, 그 가운데 효과음은 또다시 화면내 효과음과 배경 효과음 및 인공음으로 대별할 수 있다.

화면내 효과음(Local Sound)이란 화면 안에서 움직이는 물체가 내는 소리를, 배경 효과음(Background Sound)이란 화면에 보이지 않는 물체로부터 나는 소리를 말한다. 이를테면 대문을 여닫는 소리는 전자에 속하고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는 후자에 속한다.

TV드라마에서 효과음이란 화면의 현실감과 현장감을 한껏 살리고 극적 분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는 ‘모든 소리’를 지칭한다.

2.2 효과음의 기능

어느 면에서 효과음은 화면에 대하여 종속적 기능을 갖는데, 이것은 인간의 지각이 청각 쪽보다 시각 쪽에 더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며, 효과음이 음식의 양념적 기능을 담당한다는 소이도 여기에 있다.

이 글에서 효과음이란 넓은 의미로는 모든 효과음을 뜻하나 좁은 의미로는 배경효과음을 한정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며, 배경효과음 가운데서도 가장 오류가 심한 동물소리 효과음을 논의의 초점으로 삼는다.

TV드라마 제작에 임하는 다양한 전문분야 가운데, 하필이면 이런 지엽적인 효과음 분야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느냐는 반문이 있음 직한데 그에 대한 대답은 이러하다.

TV드라마에서 효과음의 기능은 음식을 조리할 때 첨가하는 양념의 기능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요리를 만들 때 주재료에 대한 양념의 분량 비는 물론, TV드라마에 있어 효과음이 차지하는 비중은 정량적으로 아주 미미하다고 할 수 있으나, 양념이 요리의 맛에 미치는 영향이나 효과음이 드라마의 질에 미치는 정성적 영향은 엄청난 것이다. 따라서 양념이나 효과음의 오용은 결과적으로 치명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하다. 이것은 마치 양념이 제대로 되지 않은 음식을 먹으려면 구역질이 올라오듯이, 효과음이 오용된 드라마를 보면 비위가 상하는 것과 같은 체험에 속한다. 말을 바꾸면 보통 질의 재료로 양념이 잘 된 요리를 선택할 것인가, 우수한 재료로 엉성한 양념을 한 요리를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와 같다.

3. TV 효과음의 오용 실례

현실적으로 TV방송이 우리의 생활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까닭에 TV드라마에 나타나는 각종 메시지는 우리의 의식주 전반에 걸쳐 온갖 유행을 주도하고 있으며, 생활 자체까지 지배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TV가 던져주는 영상을 모방하며 살아가고 있다.

특히 농어촌 생활을 체험할 기회가 드문 도시민이나 자연과의 직접적인 접촉 없이 도시에서만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경우, TV가 비쳐주는 영상과 거기 담긴 소리들은 모두가 실재하는 자연인양 인식하게 되며 결코 허구의 세계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드라마는 가장 사실적으로 제작해야 할 효과음에 허구와 날조(?)를 적지 아니 저지르고 있으니 이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가) 말매미 소리

말매미는 우리 나라에 사는 매미 가운데 가장 몸집이 큰 종류로서 벚나무, 느티나무, 버드나무 등 활엽수가 많은 지역의 나뭇가지에 붙어 ‘쐐애애’하고 몇 분간씩 긴 소리로 운다. 낮 기온이 섭씨 25도 이상을 넘나드는 7월 9일경(서울 지역 기준)부터 전국 어디서나 울어대는 곤충으로서 다른 종류의 매미들보다 훨씬 빨리 울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새’ 편에서는 논에 심은 벼가 겨우 사름을 하는 6월 중순 이전에 7월의 매미소리가 목청을 뽑고 있었다.

‘오성 장군 김 홍일’ 편에서는 자막으로 ‘50년 6월 23일’이라고 분명히 날짜를 밝히고 있었는데도, 그 장면에서 말매미 소리가 들려온 것도 잘못이다.

남들은 효과음에서 ‘도플러의 효과’를 논의한 지가 오랜데, 우리는 이제 겨우 동물 소리를 두고 맞는지의 여부를 따지고 있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노릇이다.

나) 귀뚜라미

귀뚜라미는 우리 나라 어디에서나 입추가 지난 다음인 8월 18일쯤부터 (중앙기상대 관측 기록) 울기 시작하여 서리가 내릴 때쯤 되면 땅속에다 알을 낳고 한살이를 마친다. 뜰이나 울타리 안, 부엌 또는 풀밭에 살면서 여름의 더위가 가시고 서늘한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수컷이 가을이 온 것을 알리려는 듯 짝짓기를 위해 자랑스레 종일토록 짧게 끊는 소리를 내는데, 밤에 들리는 소리가 더욱 처량하다.

그런데 얘기 중심이 7월이었고 화면의 색조도 7월의 짙푸름이 주무대였던 ‘흑과부’ 편에서 귀뚜라미를 한 달씩이나 이르게 울게 하였다.

다) 소 울음소리

TV효과음에 잘못 쓰인 동물소리 가운데 소 울음소리는 가장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소가 가장 오래된 가축으로 ‘천석꾼 살림에도 소가 반살림’이라 할만큼 농촌에서는 대단히 소중한 동물이다.

그 소가 울음소리를 내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으며, 우리가 관념적으로 생각하듯이 마구잡이로 우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암소가 발정을 하여 먼산을 바라보며 ‘음 모오오’ 하는 소리로 연거푸 울면, 멀리 있던 황소가 그 소리를 듣고 호응해서 울기도 한다. 그리고 송아지를 거느린 암소의 경우, 송아지가 어미 곁을 떠나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 어미소는 송아지를 ‘음 모오’ 또는 ‘으으음’하고 계속 부르다가 그래도 송아지가 어미 곁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하면서 좀더 큰 소리로 ‘음 모오오’하고 처절하게 운다. 송아지가 젖을 뗀 후 어미소와 갈라놓았을 때에, 어미소는 처음 며칠동안 매우 애닯게 모성 본능으로 송아지를 부르며 운다.

이밖에 길을 가던 황소가 다른 황소를 발견하면 싸우고 싶은 적의에 차서 눈을 부라리며 짧고 힘차게 울기도 한다. 그리고 송아지들은 어미 곁을 떠나서 불안에 싸이면 어미를 연거푸 부르기도 한다.

이렇듯 소의 울음소리는 대체로 번식과 관련이 깊은 것은 사실이나 일정한 번식기가 있는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매일처럼 아무 때나 울지도 않는 법이다.

‘한라산’ 편에서는 방목하던 소를 잃고 나서 그만 체념에 잠겨 있었는데 뜻밖에도 눈 내리는 밤에 소가 외양간을 찾아드는 극적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때 주인을 본 소가 느닷없이 ‘음모오’ 하고 우는소리를 냈다. 어미소가 젖을 뗀 송아지를 만났을 때는 ‘으음’하는 소리를 낼 수도 있겠지만, 주인을 보고 ‘음모오’하는 울음소리를 낸다는 것은 동물의 심리를 무시한 과장된 미화였다.

‘모자(母子)’ 편에서는 농촌 풍경이 화면에 비치자 아무 이유 없이 소 울음소리가 들렸다.

‘청소년 문학관-은하의 꿈’ 편에서 농촌 풍경을 배경으로 했을 때 소 울음소리가 지나치게 자주 들어갔다.

최초로 민간 프로덕션이 제작한다기에 적지 않은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았던 ‘수초의 노래’ 편에서도 연거푸 네 번이나 소 울음소리가 농촌 풍경에 겹쳐 들려왔는데 방송국 PD나 민간 프로덕션의 효과음 담당자가 ‘농촌 풍경 = 소 울음소리’란 등식에 안일하게 젖어 있음을 드러냈다.

‘노 은사’ 편에서는 설날 아침에 까치 소리에 섞여 네 번씩이나 소가 울었는데, 실제로 아침나절에 소가 우는소리를 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병풍에 그린 닭이’ 편에서는 전편에 걸쳐 무려 20 번이나 소 울음소리가 때 없이 들려왔는데 이것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 일이다.

이밖에 ‘비석’ 편 ‘드라마게임-6개월 후’ 편 등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7 번씩의 소 울음소리를 듣기 싫어도 들어야만 했다.

라) 늑대 소리

늑대는 개와 비슷하나 성질이 대단히 사나운 야수로서 산토끼나 꿩 등을 잡아먹고 살지만 예전엔 인가에 내려와 가축을 해친 적도 있다. 주로 야행성인 동물로서 6.25 이전까지만 해도 전국 어디서나 서식했지만 지금은 그 자취조차 찾을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런데 ‘한라산’ 편에서 늑대가 달을 보며 목을 빼고 우짖는 소리를 밤을 나타내는 효과음으로 쓴 것은 잘못이다. 이미 늑대가 없어진지 오래니까.

마) 꾀꼬리 소리

꾀꼬리는 야산이나 평지 또는 개울가의 숲에 여러 마리가 떼지어 사는 우리 나라의 여름철새로 샛노란 바탕에 검은 띠가 있어 자태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지저귀는 소리 또한 아름다워 예로부터 시문에 많이 인용되었다. 번식기나 기분이 좋을 때 ‘고오고오 고개고옥’하며 여러 마리가 화답하듯 지저귀나, 때때로 지저귐 소리 중간 중간에 듣기에 불쾌할 정도로 ‘끼야아악’하며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소리를 지르는데, 이 소리는 전혀 꾀꼬리 소리가 아닌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두 나그네’ 편에서는 화면 가득한 10월의 가을 풍경에서 꾀꼬리 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자연계에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꾀꼬리는 8월말, 늦어도 9월초까지만 지저귄다.

바) 쏙독새 소리

우리 나라엔 5월경에 날아와서 가을에 날아가는 여름철새인 쏙독새는 우거진 숲속에 서식하면서 주로 6월의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저녁나절과 동녘이 밝아오는 새벽녘에 활발히 공중을 날아다니며 ‘쏙 똑똑똑똑’하고 우는 야행성 조류이다. ‘두 나그네’ 편에서는 뜻밖에도 봄이 아닌 가을빛이 완연한 화면에 쏙독새 소리가 들려와서 당혹감을 주었다.

사) 두견이 소리

두견이는 뻐꾸기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몸집이 작은 새로, 5월경에 우리 나라에 건너와서 8, 9월경에 날아가는 여름철새이며 주로 숲 속에서 혼자 산다. 낮에도 구름이 짙거나 비가 오는 날에 울 때도 있지만 저녁이나 새벽에 야산에 있는 고목 꼭대기에 앉아 요란하게 지저귀기도 하고,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꼬옥꼭 꼬꼬꼬옥’하고 피를 토하는 듯한 소리로 우짖는 보다 야행성인 조류이다.

‘천상의 계곡’ 편에서는 무르익은 가을 풍경에 곁들여 두견이 소리가 들려와서 의아스러웠다.

‘마뜰’ 편에서는 가을걷이를 준비하는 산골사람들이 “추수는 언제 하느냐?”는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에서 두견이 소리가 효과음의 주류를 이루어서 듣는 이의 귀를 의심하게 했다. 가을에 두견이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얼토당토 않는 일이다.

‘사과와 다섯 병정’ 편에서 가을빛이 깃든 배경에 배치되는 두견이 소리에 더하여 매미 소리까지 어우러져 믿을 수 없는 자연 질서의 혼돈을 연출해 냈다.

‘전우-잃어버린 미소’ 편에서도 해바라기가 피어 씨가 영글고 있고 옥수수가 익어가며 담장 위엔 늙은 호박이 있고, 또 늘어진 칡덩굴을 비추는 화면과 함께 2번씩이나 두견이 소리가 들려왔다. 두견이는 더위가 물러가면 울지 않는 새다.

아) 멧새 소리

야산이나 풀밭, 숲 또는 논밭 근방에 살며 나뭇가지 사이에 둥지를 트는 우리 나라의 텃새 중에 멧새가 있다. 6-9월경에 관목숲의 나무꼭대기에 올라앉아서 화려한 목소리로 숲속의 아침 정적을 깨뜨린다. 번식기에는 낮에도 잦게 지저귀며 때로는 늦은 여름날 오후에도 전선줄에 앉아서 지저귄다.

‘두 나그네’ 편에선 화면 가득한 가을 풍경 속에 목청껏 멧새 소리가 효과음으로 잘못 사용되었다.

자) 산새들의 합창소리

6월이 되어 기온이 높아지고 숲속에는 갖가지 곤충의 애벌레가 부화하여 풀잎을 갉아먹는 시기가 오면, 멧새, 밀화부리, 박새, 딱새, 방울새, 곤줄박이, 휘파람새 등등 수많은 숲속의 야조들이 번식기를 맞는다. 산란기를 앞두거나 부화기를 맞은 야조들은 갖가지 목소리로 목청껏 노래하기 시작하여 야산의 숲속은 이른 새벽부터 온통 새들의 합창소리로 넘쳐흐른다. 이 때가 야조들의 노랫소리가 가장 활기에 넘치는 시기인데 약 1개월 정도의 번식기가 끝나면 산새들의 합창소리도 자연스럽게 쇠퇴해 가고 만다.

그런데 동시녹음을 했다는 낙엽 지는 하늘가의 ‘전사에서’ 편에다 무엇 때문에 6월의 산새들 합창소리를 추가 삽입했는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어디 그 뿐인가 ‘병풍에 그린 닭이’ 편에서는 풀들이 파릇한 새싹을 내미는 들판에서 3명의 시골 처녀가 나물을 캐고 있는 이른봄에 엉뚱하게도 6월의 산새들 합창이 들려왔다. 또 ‘감자’ 편에서는 화면에 보라빛 들국화(쑥부쟁이)가 하늘거리는데, 효과음은 6월을 노래하는 녹음된 산새들의 합창소리를 들려주었는 바, 이것은 날림제작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6월의 한 낮’ 편에서조차 카메라에 비친 연두색 봄날의 색깔에 반하는 산새들의 합창소리는 역겨운 바 있었다.

4. 동물 생태와 기상의 변화

야생동물의 생태와 기상의 변화 사이에는 어떤 필연적 관계가 있음직하다. 지난 몇십 년간의 정부 공식 관측기록 및 필자의 개인 기록에 따르면 서울지방에 마지막 서리가 내린 날은 4월 9일경이고 제비가 처음 발견된 날은 4월 15일경이었으니, 강남 갔던 제비는 마지막 서리가 내린 뒤 약 일주일째 되는 날에 해마다 돌아옴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의 지역별 기상 관측자료에 따르면 첫서리가 내린 날은 10월 20일경이고 기러기를 처음 본 날은 10월 19일경이었으니, 서리가 내리기 시작할 즈음이면 기러기떼가 남하하는 등 철새의 이동이나 동물의 생태와 기상간에는 명백한 함수관계가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동물 달력(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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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분 󰠐 처음 관찰한 날 󰠐 마지막 관찰한 날 󰠐

󰠐 제 비 󰠐 04. 15. (04. 06) 󰠐 10. 14. (10. 19) 󰠐

󰠐 뻐꾸기 󰠐 05. 10. (05. 13) 󰠐 - 󰠐

󰠐 종다리 소리 󰠐 04. 08. (04. 05) 󰠐 10. 09. (06. 25) 󰠐

󰠐 기러기 󰠐 10. 19. (10. 14) 󰠐 03. 14. 󰠐

󰠐 말 매 미 󰠐 07. 10. (07. 09) 󰠐 - 󰠐

󰠐 참 매 미 󰠐 - 󰠐 09. 12. 󰠐

󰠐 고추잠자리 󰠐 07. 08. 󰠐 10. 23. 󰠐

󰠐 귀뚜라미 󰠐 08. 18. (08. 11) 󰠐 - (11. 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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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이 자료는 중앙기상대에서 관측한 수원지방의 평균값이며,

( ) 속의 날짜는 필자의 관찰 기록임.

지역별 기상 관측자료(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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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 역 󰠐 구 분 󰠐 서 리 󰠐 얼 음 󰠐 눈 󰠐

󰠐 수 원 󰠐 처음 󰠐 10. 20. 󰠐 10. 30. 󰠐 11. 19. 󰠐

󰠐 󰠐 마지막 󰠐 04. 09. 󰠐 04. 03. 󰠐 03. 22. 󰠐

󰠐 대 구 󰠐 처음 󰠐 10. 27. 󰠐 11. 08. 󰠐 12. 01. 󰠐

󰠐 󰠐 마지막 󰠐 03. 26. 󰠐 03. 30. 󰠐 03. 16. 󰠐

󰠐 서귀포 󰠐 처음 󰠐 12. 16. 󰠐 12. 12. 󰠐 12. 08. 󰠐

󰠐 󰠐 마지막 󰠐 02. 18. 󰠐 03. 11. 󰠐 03. 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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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우리 나라에서 이른봄에 최초로 관찰할 수 있는 여름철새는 할미새로서 입춘(2월 5일경)이 지나기 바쁘게 2월 9일경이면 어김없이 봄의 전령으로 나타난다.

또 들판에 서식하는 종다리의 첫 지저귐 소리도 마지막 서리가 내리는 4월 9일경과 거의 일치하며, 꾀꼬리와 뻐꾸기 소리는 아카시아 꽃이 만발하는 5월 10일경으로 입하(5월 6일경)가 지난 며칠 뒤라야 비로소 들려오기 시작한다. 철새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미물이라 일컫는 벌레나 개구리도 때맞춰 나타나서 때맞춰 소리를 낸다. 매미소리는 7월 10일경 이전에는 들을 수 없고, 귀뚜라미 소리도 입추(8월 7일경)가 지난 며칠 뒤(8월 11일)에라야만 비로소 들을 수 있다.

5. 동물소리 효과음의 개선방안

가) 직접적인 원인과 개선방안-후시녹음(後時錄音)의 문제

드라마에서 그림과 소리는 일치하는 게 정상이며, 동시성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인 바, 만일 미세한 시차만 생기더라도 드라마의 흐름이 부자연스러워져서 전체적인 예술성은 반감되고 만다.

그런데 엄격히 말해서 우리 TV드라마는 대사만 보더라도 입놀림과 말소리가 정확히 일치하는 경우가 드물며, 이건 화면내 효과음이든 배경효과음이든 큰 차이가 없다. 앞에서 살펴본 TV효과음의 오용원인(誤用原因) 가운데 무엇보다도 먼저 문제 삼아야 할 직접적인 원인은 후시녹음 방식에 기인한다. 즉 오용의 근본원인은 동시녹음을 하지 못하는 데 있다.

시청자가 드라마에서 바라는 것 중의 하나는 촬영 현장에서 채음하는 독시녹음이다. 만약 ‘TV문학관’ 전부를 동시녹음 방식으로 제작할 수만 있다면 이러한 논의 자체가 불필요함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물론 ‘전사(戰史)에서’ 편에서 실험정신을 발휘해 동시녹음이 시도된 적도 있다. 외국에선 오래 전부터 동시녹음 제작 방식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는데 우리는 어찌하여 아직도 전근대적인 방식에 안주하려 하는 것일까?

동시녹음, 그것이 제작기술 부족의 문제라면 자체적으로 기술개발을 하거나, 관련요원을 해외에 파견하여 기술을 습득케 하면 된 일이요, 장비 부족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아낌없이 필요한 장비를 확보해야 마땅하다. ‘TV문학관’의 경우 ‘전사에서’ 편 이후 아직까지도 후시녹음 방식을 지속하고 있는데 이 시점에서라도 우리가 과감한 탈피를 시도하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낙후와 정체의 늪에서 헤어날 길이 없어진다. 가능한 한 조속히 동시녹음 방식을 채택해야 할 것이고 그래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후시녹음으로 보충하는 길이 최선의 방법이다.

나) 간접적 원인과 개선 방안

앞장에서 살펴본 동물소리 효과음 오용의 간접적인 원인을 유형별로 구분하면 그 첫 번째 유형은, 단기 졸속제작에 있다.

우리 TV드라마들이 무대로 삼는 화면내의 여러 풍경을 보면 거의 영락없이(몇 개의 예외를 제외하고) 이른봄이면 이른봄. 늦가을이면 늦가을 일색으로 엮어진다. 이것은 바로 단 몇 주일 동안 또는 길러야 한 달 남짓한 짧은 기간에 촬영했음을 단적으로 실증해준다.

어쨌건 누군가가,

“슈팅은 끝마쳤으나 방영일자는 각일각으로 닥쳐옴으로 녹음을 해야겠지만, 원작상의 계절변화와는 달리 필름속의 풍경은 단 한 계절뿐이기에 효과 당무자로서는 화면 속의 단조로운 색조를 다소 위장하기 위해서라도 어떤 특정 동물의 소리를 넣음으로 써 이른 봄날답게 또는 늦가을답게 카무풀라주해 보고 싶을 것이 아니냐?”

고 주장했을 때 필자는 이 말이 사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고 싶다. 하지만 이와 같은 유형으로 말미암은 과욕의 결과가 시제의 의제(擬制) 즉 계절적 시간의 억지 비약을 불러왔다.

단기 졸속제작으로 인한 문제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눈길을 방송국의 경영분야로 돌려야 한다.

(1) 제작기간의 연장

‘TV문학관’의 경우 슈팅에서 완성까지 한 편에 보통 1개월 정도의 여유가 주어진다지만 어떤 것은 단지 열흘 동안에 제작하기도 한다니, 부족한 인원과 장비로서 어떻게 그 기간 내에 차원 높은 예술작품을 제작할 수 있단 말인가? 초읽기에 쫓기는 빡빡한 일정 가운데 후속 프로그램을 또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무리 유능하고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PD라 할지라도 졸속이 아닌 작품을 제작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모든 것이 인스턴트화 한다지만 이것은 해도 너무 하는 일이며, 시청자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다.

(2) 제작비의 증액

방송국은 연간 엄청난 액수의 시청료를 거둬들이고 또 다시 엄청난 액수의 광고 수입을 올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제작에 배정하는 예산은 주제나 제작 여건에 상관없이 ‘TV문학관’ 한 편당 얼마씩이라고 한정하고 있지는 않는지? 여기서 말하는 제작시간과 예산의 문제는 방송국의 경영차원에서 빚어지는 구조적인 문제로서, 일정한 한계를 설정하던 종래의 방식에서 탈피하여 PD에게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주고 낭비가 없을 만큼 예산을 증액해야 할 것이다. 욕심을 부린다면, 몇 개월 째 휴면상태로 진행중인 ‘TV문학관’ 재방송을 앞으로 당분간 계속하더라도, 명년에 방송할 ‘TV문학관’ 50여 편에 대한 제작 기획을 금년중으로 시작하여 명년 초부터 촬영에 돌입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렇게만 된다면 늦어도 명년부터, 적어도 ‘TV문학관’만은 일정 수준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시청자는 보다 예술 높은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흐뭇한 감동을 누릴 수 있을 것이며, 아울러 PD의 과욕이 불어오는 ‘소살에다 말살을 떼다 붙이는 격’의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게 될 것이다.

TV효과음의 오용을 불러오는 그 두 번째 유형은 음향자료의 선택과 활용에 대한 안목 부족에 있다. 드라마의 무대가 농촌이란 장소를 나타내기 위해 천편일률적인 소 울음소리에 매달린다거나, 봄을 나타내는 새소리로 뻐꾸기나 꾀꼬리, 휘파람새 소리 등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은 수많은 음향자료를 취사선택하여 폭넓게 활용할 안목이 부족한 데 기인한다.

음향자료 선택과 활용의 안목부족으로 인한 자의적인 원인을 불식하는 방편으로 다음과 같은 방안을 제시한다.

① 삼원 색인표(三元索引表) 작성

방송국에서 소장하고 있는 모든 동물소리를 합리적으로 분류하는 방법을 모색해 보자.

이를테면, 평면의 횡축에 때 즉 계절과 시간을 놓고, 그 종축에 곳 즉 장소를 놓은 다음, 수직축에는 동물의 종류를 놓아두고, 화면에 비치는 영상(시간과 장소)에 알맞은 동물의 소리를 찾아내는 삼차원적 색인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현장 채음에 상당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프로그램을 ‘삼원 색인표’라 부르기로 하자. 삼원 색인표의 횡축의 눈금 간격을 보름 단위로 하거나 월 단위로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며, 하루는 적어도 새벽녘부터 밤까지를 일정한 눈금을 두어 가르는 것이 좋다. 이를테면 이른 새벽, 동틀 무렵, 해뜰 무렵, 아침나절, 점심나절, 오후 한때, 저녁나절, 해질무렵, 초저녁 따위로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종축의 눈금은 고지대, 시골의 농가부근, 개울가의 숲, 강변이나 호수, 야산의 숲, 깊은 산, 깊은 계곡, 푸른 들녘, 도시의 공원, 도시의 주택가, 도심지, 공장지대, 바닷가 등등으로 필요한 만큼 나눔 직하며, 수직축의 눈금은 벌레나 짐승과 가축 및 조류로 대별하고 조류는 텃새, 여름철새, 겨울철새 등으로 가르면 좋겠다.

이 삼원 색인표가 작성되면, 영상에 걸맞는 소리를 찾는 일차적인 바탕은 마련된다. 그렇게 되면 무대가 농촌임을 나타낼 수 있는 ‘소의 울음소리’에 가름할 배경 효과음으로는 할미새, 종다리, 꿩, 개구리, 쇠밀화부리, 뜸부기, 방울새, 붉은머리오목눈이, 박새, 제비, 때까치, 매미, 곤줄박이, 갈가마귀(6.25 이전), 개똥지빠귀 등등 얼마든지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② 야생동물의 생태 및 심리의 체득

자기 생각을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람들[聾啞者]의 경우 대부분이 청각기관의 장애로 인해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탓에 언어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지, 발성기관의 장애로 인하여 그런 것은 아닌 사람이 많다.

사람에 따라서는 여남은 살 때까지 정상적으로 자라면서 보통 아이들과 같이 듣고 말을 하다가도, 어떤 계기로 말미암아 청각기능을 상실했을 때는, 그 때까지 배웠던 말조차도 다 잊어버리고 결국 농아자가 되는 수도 있다. 이로 미루어볼 때 농아자가 되는 이유는 듣지 못하는 까닭이며, 언어를 통한 표현 능력은 귀를 통한 소리의 입력을 바탕으로 길러지는 법이다.

그러므로 적절한 효과음의 선택능력을 키우고 살찌게 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소리를 많이 듣는 훈련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쓰여진 효과음의 내용을 보면 손쉽고 편한 소리, 지난해에도 썼고 지난달에도 썼던 것을 생각 없이 반복해서 쓰고 있음을 본다. 이건 나태의 표본이며 얄팍한 속임수요 적당주의의 산물일 뿐이다.

여기에 추가하여 고려해야 할 것은 동물 생태학 또는 동물심리학적 접근이다. 어떤 동물에 그때 거기서 ‘왜 그런 소리를 내느냐’ 하는 문제는, PD나 효과 담당자가 자연속에 파고들어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고 일일이 체득함으로써 ‘귀가 뚫리도록 하는 방법’이 가장 첩경이다. 이 글에서는 ‘동물이 왜 소리를 내는가?’ 또는 ‘그 소리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일부러 언급하진 않았는데, 그것은 필자의 수백 마디 설명보다 생태관찰을 통한 체득만이 정도라고 믿기 때문이며, 동물심리학을 운위하는 것은 동물의 정서는 그 동물의 소리로서 정확하게 표출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기왕에 후시녹음을 할 바엔 극적 효과의 강조를 위해서 필요한 만큼 과장을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 말한 방식으로 녹음을 진행해 나간다면 최소한의 기저(基底)는 지켜질 것이며 오류의 폭은 최소화할 수 있다. 이런 과정만 거친다면 계절은 물론 어느 달 며칠쯤 또는 하루 중 어느 때냐, 숲이냐 산골 마을이냐 하는 시간이나 장소까지도 효과음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동물생태학과 동물심리학의 대가가 있는 각 대학의 동물학 연구실에 PD나 효과음 실무자를 파견하여 위탁교육을 받게 하던가, 전문가로부터 일정한 자문을 받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PD의 귀가 뚫리기만 하면, 마치 시퍼런 뽕잎을 갉아먹은 누에가 희디흰 명주실을 뽑아내는 것과 마찬가지의, 현장감과 박진감이 흘러 넘치는 호소력 있는 TV드라마를 만들어 내게 될 것이다.

심하게 말해서 PD나 효과 담당자가 들판과 숲속을 누비면서 직접 채음(採音)한 소리를 효과음으로 쓴다면, 그는 언제 어디서 채음했는지를 정확히 기억할 것이므로 오류를 범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5. 마무리

이 글에서 필자는 ‘TV효과음이 갖는 문제성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점에서부터 출발하여 ‘TV효과음이 나아가야 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일련의 논의를 전개하였다. 다만, 효과음 전반에 걸쳐 조감하지 못하고 극히 한정된 부분만 살펴본 아쉬움이 많다. 현실적으로 우리 TV드라마가 당면하고 있는 주제나 소재, 연기자와 연기력 문제 등등 허다한 발등의 불을 제쳐두고, 어찌 자질구레한 효과음의 문제에까지 성실한 주의를 기울일 여유가 있을까보냐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의 구실로 뒤의 것을 경시한다는 것은 성숙한 자제라 할 수 없다.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을수록 앞을 내다보고 작은 것부터 개선하는 것이 전체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체는 부분의 집합이요, 부분은 전체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들이다.

나아가 TV효과음의 전문분야에 대해서도 더욱 체계적이며 알찬 연구가 꾸준히 계속 되어야 하겠다.

방송심의 1986. 11. 제 65호 p10-16 방송위원회.

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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