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밀구’
마을 이름 연구
‘밀구’와 ‘밀개산’의 용(龍)
김 주 석
1. 들머리
2. 현지 설화(現地說話)
가. 용의 득천 설화
나. 미륵 설화
3. ‘밀구’의 땅이름 유래
가. 용(龍)과의 연관성
1) 용의 옛말과 땅이름
2) [mili]의 [l] 과 [milku]의 [lk]와의 관계
3) ‘밀개산’의 의미와 [l]속에 잠재된 [lk]
4) 용왕 먹이는 습속
5) ‘용’이 갖는 의미
6) [milki]와 [milku] 및 [milkuj]의 관계
나. 미륵과의 연관성
다. 지형과의 연관성
4. 마무리
참고문헌
(이 글은 한국땅이름학회에서 발표된 원고임)
1. 들머리
신라 천년의 고도인 경주(慶州)에서 4번 국도를 따라 대구쪽으로 한 삼십리쯤 가다 보면, 남쪽엔 斷石山(827m), 서쪽엔 五峰山(640m), 그리고 동북에서 동동남쪽에 이르는 龜尾山(594m)의 긴 등성이 및 동남쪽의 碧桃山(424m) 등으로 삥둘러 싸인 아늑한 乾川盆地에 다다르게 된다.
이 글에서는 건천분지의 中東部에 위치한 자연부락인 ‘밀구’ 또는 ‘밀귀’라는땅이름을, 설화 및 언어학적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 마을은 행정구역상으로, 慶尙北道 慶州市 乾川邑 龍明 2里에 속한다. 먼 옛날 六村시절에는 茂山大樹村에 속했던 건천분지는 남북의 길이가 약 삼십 리, 동서의 폭이 십리쯤 되는 ‘오이씨’ 모양으로 생긴 構造谷으로서, 谷底는모두 논밭으로 되어 있다. 신라때 이 고장은 王都인 서라벌[慶州]을 방어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때문에 이 고장에 남아 있는 富山城地와 鵲院의 토성(土城)터 등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군사적 가치를 지닌다 하겠다.
이 ‘밀구마을’의 땅이름을 이두식으로 표기한 것 가운데 하나인 蜜耳를 두고, 일설에 의하면 옛날 이 마을에 화초가 많아서 벌꿀이 많이 생산되었기 때문에, ‘밀구’란 ‘꿀실’이나 ‘꿀이골’로 볼 수 있다거나, 다른 표기인 ‘密耳는 빽빽한 숲이 있는 골짜기인 密谷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견해가 있으나[慶州水利誌, 1983], 여기에 대하여 현지 마을 사람들은 한결같이 첫 마디에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李 聖寬.남, 67세, 禹 임준. 남, 65세, 朴 永澤. 남, 65세, 李 聖六. 남, 47세)
그렇다면 ‘밀구’란, 어디서 생겨난 말이며, 무슨 뜻을 지녔을까?
2. 현지설화(現地說話)
건천분지 한가운데쯤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옛길 가에는 백여 년 전까지 장승이 서 있었다하여 長承洞이란 마을이 있는데, 그 ‘장승마을’의 동쪽이요 ‘구미산’ 서쪽 기슭에 바로 ‘밀구’또는 ‘밀귀’ 라는 마을이 있다. 또 ‘밀구마을’에서 건너다 보이는, 분지 서쪽의 五峰山 기슭, 女根谷 아랫녘에는 ‘섶들’[薪坪](현지 발음 ; sepdul, sipdul)마을이 있는바, 이 세 마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얽혀서 토박이 노인들 사이에 전해져 온다.
가) 용(龍)의 득천설화(得天說話)
우선 ‘밀구’마을 부근에서 채집된 용의 득천 설화부터 살펴보도록 한다.
첫째로, 마을 입구의 ‘밀구못 둑’에 연해 있는, 즉 마을의 동남쪽에 위치한 ‘밀개산’ 중턱에는, ‘밀구못’에 살던 늙은 자라가 ‘귀딱지’ 부근의 청석 틈으로 기어들어 가서, 용이 된 뒤 득천했다는 ‘자라용난 자리터’로 ‘자라용난 구덩이’란 것이 청석에 움푹 파진 자국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겨울이 들어 ‘밀구못’에 얼음이 꽁꽁 얼라치면, 커다란 맷방석 몇 장 크기만큼은 겨우내 결코 어는 법이 없는데, 이를 두고 현지에서는 용이 날아가 버렸다는 지금까지도, 못 속에 숨은 해묵은 용이 숨을 쉬기 때문이라고 믿으면서, 못 가운데 얼지 않는 부분을 가리켜 ‘숨골’ 또는 ‘숨구멍’이라 부른다.
또 ‘밀구못’의 서북쪽인 ‘불뫼산’1) 기슭의 산자락과 콩밭의 경계 지역에도 구렁이가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다는 ‘사구렁이 용난 자리’란 땅이름이 있다(그림 1 참조).
1) ‘불뫼산’에 대해서는 졸고 “땅이름의 암수”를 참조하기 바란다.
뿐만 아니라 ‘밀구마을’ 뒷산인 ‘바람부리봉’ 너머에는 득천하던 또 다른 용이 꼬리를 쳐서 생겼다는 ‘용내기’란 골짜기가 있고, ‘밀구’ 마을 안골짜기에는 ‘용젖통’이란 땅이름조차 있는데, 위에 말한 2 개의 ‘용난 구덩이’를 글쓴이가 직접 확인한 바 있다.
현지에서 전하는 바로, ‘밀구못’은 신라때 막은 무척 오래된 저수지라고 하며, 못둑에 해묵은 고목나무가 빽빽히 늘어 서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본디 못의 면적은 555 마지기였는데 비해 蒙利面積은 555 마지기 닷 되지기로서 못의 넓이가 그 저수지의 넓이보다 반 마지기쯤 적었다고 하는 얘기도 전한다.2)
2) ‘밀구못’이 신라때 막은 것인지를 확인할 길은 없으나,못의 면적이 몽리 면적과 비슷하다는 전설은 현실적으로 믿기 어렵다, 반면, 밀구 못안 골짜기만큼 단위 면적 당 여러 가지 땅이름이 있는 곳도드문성싶기에, 이곳에는 참으로 오래 옛날부터 마을이 있었으리란 것쯤 짐작하고도 남음이있다 하겠다.
그런데 이 못은, ‘귀딱지’라는 자라용이 득천한 쪽 못둑이 어쩐지 자주 터지곤 하였단다. 터지면 막고 막으면 터지고, 또 막으면 터지기에 거기다 할 수 없이 어느 큰 스님이 가르쳐 준대로, 황소 한 마리를 산 채로 묻고 나서부터는 청석 틈으로 조금씩 물이 새기야 할망정 터지지 않은 반면에, 큰비가 오거나, 섣달 그믐날 자정이면 구슬픈 황소의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얘기가 전해 온다.( 金 月川 남 75세, 李 聖寬)
이밖에 “慶尙北道 地名由來 總覽”에 볼라치면 龍明里란, ‘구미산’에서 옛날에 용이 날아갔다고 하는 ‘용암’이 있기에, 거기서 龍자를 따고 ‘명장마을’에서 明자를따서 이를 합쳐 ‘龍明’으로 정하게 되었다고 적혀 있다.
나) 미륵 설화(說話)
앞에서 말한 ‘장승마을’과 ‘밀구마을’ 및 ‘섶들마을’ 등 세 마을을 두고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해 온다.
옛날 어느 때, ‘장승마을’ 앞의 야트막한 동산인 ‘동뫼산’에는 그리 크지 않은 돌미륵이 앉아 있었다. 그 돌미륵이 동쪽을 보고 앉아 있으면, 소변이 나오는 동쪽보다는 더욱 기름진 대변이 나오는 서쪽 마을에 풍년이 들고, 서쪽을 향한 앉음새를 하면, 반대로 동쪽 마을에 풍년이 든다고, 농사를 주업으로 해온 마을 사람들은 굳게 믿어 왔다. 그런데 동쪽 마을에는 鄭씨네가, 서쪽 마을에는 朴씨네가 적잖게 살고 있었던가 본대, 우연찮게 양쪽 마을엔 장군이라 부를만한 장사가 각각 한 사람씩 살고 있었다. 3)
어느 쪽에서 먼저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느 날 아침에 보니 ‘동뫼산’의 돌미륵이 동쪽을 향해 앉아 있었는가 하면, 그 이튿날은 또 서쪽을 보고 돌아앉아 있기를 밤마다 번갈아 가며 거듭했다. 이것은 필시 풍요를 열망하는 순박한 농사꾼들의 심성의 발로인 듯 싶은 바, 보통 사람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그 일을 쉽사리 해낸 당사자는 바로 양쪽 마을의 장사였음에 틀림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장승마을’ 사람들이 살펴보니, ‘동뫼산’의 돌미륵이 밤사이에 간 곳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건, 아마도 밤마다 돌미륵을 돌려놓는 일에 만족하지 못한 두 장군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 아예 돌미륵을 자기 마을로 업어간 탓이리라.
3) 지금도 섶들엔 朴씨네가, 밀구엔 鄭씨네가 수월찮게 살고 있다.
하룻밤엔 ‘섶들’의 박 장군이 서쪽 마을 앞의 못둑에 업어다 두면, 그 이튿날 밤엔 그 무거운 돌미륵이 정 장군에게 업혀 동쪽의 ‘밀구마을’ 입구의 못둑에 가서 앉아 있곤 하기를 또 끝없이 계속되었다. 이러기를 밤마다 되풀이하던 터에, 동쪽 마을의 정 장군이 그만 무거운 병에 걸리고 말았으니, 그가 아무리 장사라 한들, 병 앞에는 어쩌랴! 5 마장이 넘는 밤길을 돌미륵을 업고 비호같이 달릴 수 없게 된 정 장군으로서야, 풍요의 상징인 돌미륵을 ‘섶들마을’에 앉아 있도록 놓아둘 수도 없는 노릇이매, 궁여지책으로 떠오른 것이 돌미륵의 중요 부분인 두상(頭上)만이라도 떼어 오는 것이 상책이란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병든 몸을 무릅쓰고 힘겹게 두상을 업고 온 정 장군은,
‘만일 내가 죽고 보면 두 마을 사이에 있었던 무언의 실랑이는 끝장이 날 테고, 결과적으로 우리 마을엔 가없는 흉년이 찾아들 것’처럼 여겨졌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동쪽 마을의 정 장군은 자기 마을을 가난과 질병에서 구하고자 하는 일념에서 그만 아무도 모르게 마을 부근 어디에다, 남몰래 업어온 그 두상을 깊이깊이 파묻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런 연유로 지금도 ‘섶들마을’ 앞의 못둑에 가면, 두상을 잃은 장정 크기의 돌미륵(비로자나불)이 남쪽의 단석산(斷石山)을 향하여 마치 지난날의 역사를 혼자만 아는 듯 묵묵히 앉아 있다. 그러나 비록 지금은 남쪽을 향해 앉아 있으나마, 50년 전까지만 해도 돌미륵의 앉음새는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니, 돌미륵의 앉는 방향을 둔 마을 사람들의 집념은 끈질기다 못해 처절한 일면까지 내비친다 하겠다.
위에 설명한 사정으로 말미암아, 돌미륵의 몸통이 댕그랗게 남아 있는 저수지의 이름은 오늘날 ‘부처못’이 된 반면, 동쪽 마을의 이름은 미륵의 머리가 묻혀 있는 곳이라 하여 ‘밀구’가 되었다고도 전해 온다.(朴 永澤)
3. ‘밀구’의 땅이름 유래
가) 용(龍)과의 연관성
1) 용(龍)의 옛말과 땅이름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龍의 득천설화를 두고 볼 때, 이 마을 이름은 龍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성싶고, 나아가 어떤 관련이 있음 직하므로 그 연관성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옛날에는, 龍을 순 우리말로 ‘미르’ 또는 ‘미리’라고 불렀다. 訓蒙字會에는 ‘미르龍’이라 했고, 雅言覺非에는 ‘미리龍’이라 했으며, 현지 서당에서 훈장이 학동들에게 千字文을 가르칠 때는 ‘미리龍’이라고 가르치곤 했다. 뿐만 아니라, 銀河水를 ‘미리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 마을 이름을 입말[口語體]로는 ‘밀구’, ‘밀귀’, ‘밀기’ 또는 ‘밀리’라고도 하는데, 그 가운데 ‘밀구’가 오늘날 가장 지배적으로 쓰이며, 글말[文語體]로서 東京雜記에는 密耳村으로, 東京通誌에는 密耳部落이라 적고 있으며, 현지 사람들이 써 보내는 편지나 訃告紙 또는 賻儀簿에는 彌耳 또는 密耳, 密九, 密龜로도 표기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한자 표기는 密耳이다. 또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지도에는 ‘밀구’라고 분명히 한글로 적혀 있다.
본디는 순 우리말인 것을 한자를 빌어 쓰다 보니 여러 가지 다른 표기 방법이 생겼을 뿐으로, 한자 표기 방식이야 ‘꿀 蜜’자를 쓰든, ‘빽빽할 密’자를 쓰든 상관없이 ‘밀’은 義借가 아닌 音借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자 표기야 어떻든 간에 현지 사람들은 이 마을을 가리켜서 [mili]라고도 부른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이 마을의 땅이름은 [milku] 또는 [milki], [milkuj]와 더불어 [mili]가 공존하면서, [mii](彌耳)란 소리까지로 나누어지는 바, 이들 말의 상호 관련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용을 뜻하는 옛말은 [miri]이고, 용의 득천 설화가 수북히 있는 密耳로 표기된 땅이름의 현지 발음은 [mili]이다.
[mili](용)에서의 리을(ㄹ)은 [r] 성이고 [mili]에서의 리을(ㄹ)은 [l]성일지라도 경주말에서 [r]과 [l]은 굳이 구별되는 소리가 아닌데다가 [r]은 [l]로 된소리화 할 수 있는 까닭에 [miri]와 [mili]는 같은 말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2) [mili]의 [l]과 [milku]의 [lk]와의 관계
여기서 마을이름인 [mili] 가운데 [l]이 갖는 소리값은, 경주말에서 [lk]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란 가정을 할 수 있으며, 경주말에서의 [l]과 [lk]의 관계를 이름씨 가운데서 살펴보면 표 1과 같다.
이 표는 우리 나라 중부지역 방언(중부말)의 [l]과 경주 지역 방언(경주말의 [lk]를 대응시켜 본 것이다.
표 1. 이름씨 가운데 [l]과 [lk]의 관계
옛 말 한자 중부말 경 주 말 과 그 사 용 례
가 알ㅎ(앓) 秋 가을 가싥 [금년 가실개는 장가를 들어야지.]
- 肥料 거름 걹엄 [걸검 지고 장에 간다.]
겨 을ㅎ(읋) 冬 겨울 저싥 [저실개는 못에 얼음이 언다.]
골 희 環 고리 곩앵이/곩이 [골개이 없는 개장수.]
길ㅎ(긿) 道 길 짉 [질개 떨어져 있는 돈보따리.]
- 獐 노루 놁앵이/놁이/놁앙 [놀개이처럼 뛴다.]
돌ㅎ(돓) 石 돌 돍 [돌개 걸려서 넘어질라, 조심해라!]
- - 도라지 돍애/돍아지, [어느 놈은 돌개 먹고, 어느
놈은 인삼 먹나? 세상 참 고르잖다.]
- 野 들 듥, [가실개는 들개 나락이 영근다.]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중부말에서 [l]로 소리 나는 받침 가운데는, 경주말에서 [lk]로 소리 나는 것이 적잖게 현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와 유사한 현상이 울산 지방의 땅이름에도 남아 있으니, 옛날의 ‘살그내=삵내’가 지금은 ‘살내’(箭川)로 표기되며, 또 ‘칡바우’는 ‘칠암’(七岩)으로 고쳐져 있음이 그 보기이다.
움직씨에 있어서도 경주말에서는 [lk]로 변한 것들이 중부말에서는 [lh]로 변한 것도 더러 있는데 그 예는 표 2와 같다.
표 2. [lh]와 [lk]의 관계
중부말 한자 경 주 말
끓- (沸) [국이 팔팔 껄거야만(끓어야만) 밥상을 차리지.]
닳- (磨) [헌 신이 다 달거머(닳으면) 새 신을 사기로 하자꾸나.]
닳- (煎) [새 며누리가 정성껏 달긴(닳인) 보약이니, 들어보시지요.]
쓿- - [보리쌀을 한 번만 더 실거머(쓿면) 좀더 보얗게 될텐데.]
앓- (病) [감기는 여간 알거도(앓아도) 밥만 잘 먹으면 나을 게다]
잃- (失) [소매치기에게 주머니에 있던 돈을 몽땅 일겄다(잃었다).]
표 1과 표 2에서 예를 든 낱말들은 중부말에서는 [l], [lh]이지만 경주말에 서는 모두 [lk]로 소리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더욱 묘한 것은 표 2에서 든 [lk]의 소리값과 현대어의 [lk]의 소리값이 경주말에서는 전혀 구별 없이 모두 [lk]로 동일한 소리값을 갖는다는 점이다. 그 보기를 들면 표 3과 같다.
표 3. [lk]의 경주말 소리값
중 부 말 경 주 말
갉- [각다] [갈따], [쥐가 독을 갈가도....... ]
까닭 [까닥(은, 이)] [까달ㄱ], [그 까달건......, 까달기 뭔지 .........]
낡- [낙다] [날따], [버선이 날가도..... 구두가 날거면......]
맑- [막다] [말따], [말건-물, 유리가 말거면.. 아무리 말가도....]
밝- [박다] [발따], [발건-달, 등불이 발거도...횟불이 발거서....]
삵 [삭] [살갱이, 실갱이]
중부말의 [lk]에서 [l]은 묵음이 되지만, 경주말에서는 [l]이 묵음이 되지 아니하며, 곡용(-이, -에)이나 활용(-아도, -아서, -아라) 등에서 고스란히 있는 그대로 소리 난다는 것도 눈여겨볼 일이다.
중부말의 [l]이 경주말에서 엉뚱하게도 [lk]로 소리나는 경우도 허다한데, 특히 피동형이나 사동형의 語間末音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바, 그 실례를 들면 표 4와 같다.
표 4. 중부말 [l]과 경주말 [lk]의 관계
중 부 말 경 주 말
돌과 쌀을 갈리- (고르-) [갈개다, 갈개고, 갈개지, 갈개더라,
갈개도, 갈개서, 갈개라]
콩나물을 기르- [질구우다, 질구우고, 질구우지, 질구우더라
질가아도, 질가아서, 질가아라]
쉬도록 놀리- (休) [놀구우다, 놀구우고, 놀기이지, 놀기이더라]
고무줄을 늘이- [널개다, 널개고, 널기지, 널개더라]
우는 아기를 달래- [달개다, 달개고, 달개지, 달개더라]
싸움을 말리- [말기다, 말기고, 말기지, 말기더라]
새옷을 마르- [말따, 말꼬, 말거서, 말거면, 말가도]
본디 것으로 물리- [물기다, 물구우고, 물구우지, 물구우더라]
위와 같은 경주말의 언어학적 특성에 대해, 서울대학교의 崔明玉 교수는 <月城地域語의 音韻論> (1982)에서 "경주말에 [h] > [k]의 변화가 있었는데, 이 변화는 주로 [l] 뒤에서 일어났으며, 동사의 경우에는 동작동사의 語間末 위치에서 일어났던 것"이라는 견해를 펴고 있으니, 이는 글쓴이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마찬가지로, 경주말에서 발음되는 [lk]는 중부말의 [lk]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으리 만큼 [lh] 에서든 [lk]에서도 [lk]로, [l]에서도 [lk]로 소리나는 등 다양하고 많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상의 변화로 미루어 볼 때 [mili]는 [milki]가 될 가능성이 충분한 말이다.
3) ‘밀개산’의 의미와 [l] 속에 잠재된 [lk]
여기서 ‘자라용 난 구덩이’가 있는 산의 땅이름이 ‘밀개산’(그림 1 참조) 이란 사실을 두고 한 가지 더 살펴보기로 한다. 경주말에서 ‘밀개’란 말에는 중부말의 ‘고무래’와 맞먹는 뜻이 있다. 즉, 곡식을 멍석에다 펴거나 그러모을 때 쓰는 고무래는 T字 모양을 한 농기구이나, ‘밀개산’의 지형은 고무래 모양과는 전혀 딴판이므로 ‘밀개산’과 고무래는 결코 상관이 없다 하겠다. 그러면, ‘밀개산’이 갖는 뜻은 무엇일까.
여기서, ‘밀개산’의 의미는 용난 구덩이가 있는 ‘용의 산’이란 뜻이라고 가정해 봄 직하다. 즉, ‘용의 산’은 우리 옛말로 ‘mili-뫼’ 또는 ‘mili-산’이라야 하고, 경주말의 음운법칙으로 볼 때 ‘mili-산’ → ‘milki-산’을 거쳐 ‘밀기산’ 이나 ‘밀개산’으로 발음될 수밖에 없는데, 지금도 현지에서는 ‘밀기산’이라 하지 않고 "밀개산의 용난 구덩이에서 화전하자"는 말이 있으니 ‘밀개산’은 용의 산, 즉 용산(龍山)이란 뜻을 지닌다 하겠다. 이 ‘밀개산’이란 야산의 땅이름에서도 [l]이 [lk]로 변화할 수 밖에 없는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경주말에서 ‘용’을 뜻하는 [mili]는 [milki]로 변할 수 있는 말임을 밝혀 보았다.
4) 용왕 먹이는 습속
나아가 글쓴이가 현지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마을 부녀자들 사이에 ‘용왕 먹이’는 습속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건 이른 아침의 해뜰 무렵에 깨끗한 물가에 가서 용왕에게 정갈한 제수를 바치며 복을 비는 기복(祈福) 의식인데 그 상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일이 용왕 먹이러 가는 날이라면, 그 아낙은 마음을 가다듬고 부정한 것을 멀리하고, 험한 것을 보지 않으며 남편과의 잠자리까지도 삼가한다.
예를 들어, 집안에 심한 부스럼을 앓는 식구가 있어, 용왕에게 쾌유를 빌고자 할 때는, 미리 5 색 헝겊을 실로 묶어 아픈 사람의 부스럼을 3 번 쓰다듬은 다음, 내일 아침에 가져갈 광주리에 담아 둔다. 이튿날은 신새벽에 일어나서 냉수에 목욕하고 머리를 빗은 다음,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별도로 간장 종지 2 개를 준비하여 한쪽에는 밥을 담고, 다른 한쪽에는 소금을 담아 둔다. 해 돋기 전에 새벽 하늘이 희붐할 때, 개울가의 미루나무나 땅버들나무가 있는 곳에다 광주리의 것들을 진설하고, 두 손을 마주 비비며 일러 가로되,
"물밑에 용왕님요 물위에 용왕님요
동해바다 용왕님요 서해바다 용왕님요
남해바다 용왕님요 북해바다 용왕님요
사해칠성 용왕님요 선살 먹은 아무개가 4)
부스럼이 났는데 사해칠성 용왕님이
엇들고 받들어서 물에 가시 집어 아신듯이
금일 금시라도 나는 듯이 부는 듯이
엇들고 받들어서 낫게 해 줍시사...."
4) 나이는 몇 살 먹고, 이름은 누구누구인.....
하고 정성껏 빌손을 하면서 5 색 헝겊을 살아 있는 나무에 매어 달고, 숟가락으로 종지 속의 밥과 소금을 개울물 속으로 훌쩍훌쩍 떠 넣는다.
5) 용이 갖는 의미
속담에 ‘용꿈을 꾸었다’고 하면 엄청난 행운을 얻었다는 말인데, 상상의 동물인 용이 우리 생활 속에 얼마나 깊숙이 파고 들어와 있는 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를테면 건물의 上梁文에는 龍자와 龜자를 쓰며, 비록 초가라 할지라도 지붕의 꼭대기는 ‘용마루’라 부르고, 그 용마루를 덮은 이엉을 ‘용마름’이라 한다. 묘터를 잡을 때도, 뻗어내린 산줄기인 來龍부터 본 다음 左靑龍을 살피게 마련이다. 농촌에서 용왕제를 지내는데 비해 어부들은 ‘용신’을 받들어 풍어제를 모신다. 민간에서뿐만 아니라 궁중에서조차도, 임금님의 얼굴은 ‘용안’이요, 옷은 ‘곤룡포’라 했으며 의자는 ‘용상’이고, 가마는 ‘龍駕’, 말은 ‘용추마’라 했다. 벼슬길엔 ‘登龍門’이 있고, 세종대왕은 ‘龍飛御天歌’를 짓게 했다. 신라의 사찰로는 皇龍寺가 있으며, 문무왕은 죽어서까지 나라를 지키는 동해의 ‘용’이 되기 위해 바다에 수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한편, 홍경표 선생이 ‘龍神說話와 그 象徵體系試攷’에서, 용에 관하여 밝힌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龍이란, 우리 고대 南方국가에 편재했던 매우 일반적인 상상력에서 나온 초자연적인 가상동물의 하나였다. 용은 특히 물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졌는 바, 땅과 하늘을 잇는 유일한 생명체인 동시에 이승엔 탄생을, 來世엔 득천을 가져다주는 토탬이었다. 구비자료의 보편성에서 볼 때, 물은 탄생과 생명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으며, 특히 정착 농경민족인 우리에게 있어서 물은 곧 농사-식량-생명의 근원에까지 연결되는 바, 물의 모성적 이미지를 구상화하는 상징적 매개물로서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곰(熊)이 등장하는 북방 신화체계와는 대조적으로 반도의 남쪽에 정착한 고대 여러 부족국가에서는 용을 보편적 토탬물로 삼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현세와 미래의 안락을 희구하는 원시 심성의 발로로, 신라 사람들에게 있어 용은 가난과 질병을 막아 줄뿐만 아니라, 도적이나 외적으로부터 부족을 보호해 주며 대풍과 풍요까지 가져다주는 부족 통합의 표상물인 수호신이었다. 삼국유사에 나타난 여러 가지 용에 관한 설화를 훑어 볼 때, 용은 초인간적인 능력을 지닌 동시에, 어느 면에선 인간적인 속성까지도 지닌 존재였기에 용은 숭배와 경이의 대상이 되어 신라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원초적인 신이요 하늘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건천분지 안에만 하더라도 ‘용’이란 글자가 들어 있는 땅이름이 허다한 바, ‘용명리’ 이외에도 ‘五龍골’, ‘水龍골’, ‘龍尾골’, ‘龍來골’, ‘용다리껄’ 따위가 있을 뿐 아니라, 경주시 일대엔 龍과 관련된 땅이름이 무려 서른 곳을 넘고 있으니 [慶尙北道 地名由來 總覽] 서라벌에서의 용 사상은 대단히 뿌리 깊다고 믿어진다.
6)[milki]와 [milku] 및 [milkuj]의 관계
다음으로 [milki]의 끝말 [ki]는 경주말에서 [ku]로 변화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중부말의 [i]와 경주말의 [u]의 관계는 표 5와 같다.
표 5 중부말 [i]와 경주말 [u]의 관계
중 부 말 경 주 말 후 기 중 세 어
거미(蜘蛛) [거무] kamij(訓蒙字會)
kamuj(柳氏物名考)
나비(蝶) [나부] napʌj(釋譜詳節)
napoj(杜詩諺解初刊)
napuj(柳氏物名考)
모기(蚊) [모구] mokʌj(月印釋譜)
mokoj(朴通哥諺解重刊)
메밀(국수) [매물] -
장기(棋)(두다) [장구] -
조기(생선) [조구] -
침(흘리다) [춤] -
위 표 5에서 보듯이 [i]는 경주말에서 [u]로 변화할 수 있는 요소가 있으므로 [milki]도 [milku](密九/密龜)가 될 수 있음직하다. 이렇게 대응되는 두 모음인 중부말의 [i]와 경주말의 [u]에 대해 崔明玉 교수는 "모두 후기 중세어의 [uj]로부터 서로 다른 통시적 음운규칙에 의하여 결과되었다"고 설명하면서, [uj]*를 재구(再構)하고 있으니 [milku]는 [milkuj]일 수 있다 하겠다.
한편, 용명 2리와 경주 시내를 왕복하는 시내버스 표지판에는 경주↔밀구라고 적혀 있는데, 이를 두고 몇몇 사람들은 ‘밀구’는 옳지 않으니 ‘밀귀’로 고쳐야 한다는 주장(李 元柱. 남, 58세)도 의미가 있다 하겠다.
뿐만 아니라 마을 이름의 한자 표기에는 전술한 바와 같이 密耳, 彌耳, 蜜耳 등 어느 경우든 간에 耳자를 쓰고 있는데, 사람의 귀[耳]를 현지에서 ‘ku’라 하지 않고 ‘kuj’와 ‘ki’의 중간쯤으로 발음하는 현상을 두고 볼 때 密耳의 耳는 義借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崔明玉 교수가 재구한 [uj]의 견해와 글쓴이의 주장은 맞아떨어지는 바, [mili]를 재구하면 [milki]를 거쳐 [milkuj], [milku]가 되고 이를 한자를 빌어 이두식으로 표기하면 密耳나 蜜耳가 된다. 이로써 密이나 蜜은 ‘밁’[milk]의 音借이고, 耳는 [uj] 또는 [kuj]의 義借나 音借라 믿어진다.
따라서 ‘밀구’란 말은 ‘밀귀’일 수 있다. 현지에서 오늘날 지배적으로 쓰이는 ‘밀구’란 말이 전시대에 ‘밀귀’로 쓰여졌기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지금도 ‘밀귀’ 나 密龜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라 해석된다. 또 彌耳는 [mili] 속의 [l]인 流音이 탈락한 것으로 보이는데, 경주말에서는 갈(磨)다를 ‘가다’로, 달(甘)다를 ‘다다’로 발음하는 등 모든 ‘-ㄹ다’에서 [l]은 탈락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바 이와 같은 유음탈락 현상에 의해 [mili]가 [mi-i]로 변한 것을 소리 옮김으로 표기하느라 彌耳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나) 미륵과의 연관성
다음으로 [milku] 또는 [milkuj] 마을 이름과 미륵과의 연관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공교롭게도 이 마을 어귀에 서서, 십여 리 밖의 정 남쪽을 바라다보면, 옛날 화랑의 수도장이었다는 단석산(斷石山, 827m) 의 웅장한 모습이 건천 분지 너머로 시야에 들어온다. 연전에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五岳學術調査團에 의해, 신라의 화랑들이 이 단석산에서 수도한 사실을 증명해 주는 석굴사원 터가 확인됐다. 오랜 세월 풍화된 암벽에 새겼으되,
".....於山岩下, 創造伽藍, 因靈虛名神仙寺, 作彌勒石像一區, 高三丈......"라 했으니
이 것으로 석굴사원의 이름이 신선사(神仙寺)임이 명백해진 동시에, 주존불이 미륵불임이 확실히 밝혀졌다.
이 석굴을 현지에선 보통 "탱바우절"이라고 한다. 5)
5) ‘탱바우절’이라 함은 바위에 탱화가 새겨져 있는 절(寺)이란 뜻이고, 그 탱화의 대상이 바로 미륵불이다.
이로써 三國史記 김유신전에 나오는, ‘김유신이 중악 석굴에서 행한 수도’의 의의가 드러났는 바, 중악(中岳)이 바로 단석산이고, 화랑의 신앙 대상이 다름 아닌 미륵이었다는 증거가 제시된 셈이다.
다) 지형과의 연관성
이 [milku] 마을을 둘러싼 지형을 살펴보면 묘한 일면이 없지 않다.
자연 부락인 용명 2리(114호, 567명, ’84. 10 현재)는 ‘밀구’와 ‘당사골’이란 두 마을을 통털어 가리키는데, 이 마을은 구미산의 얕으막한 산자락 가운데선 비교적 높은 편인 ‘바람부리봉’을 북쪽의 정점으로 하여 해발 200 미터쯤 되는 야산에 둘러싸여 남서쪽으로 탁 트인, 아늑한 골짜기 속에 소쿠리 모양으로 들어앉아 있으며, 마을 입구에 ‘밀구못’이 자리잡고 있어서, 전형적인 우리 나라 농촌 마을이 갖는 배산임수(背山臨水) 형상을 하고 있다.
동구 밖 서편은 넓은 들판인데, 인근에선 가장 기름진 편이어서 150 평을한 마지기로 하는 문전 옥답이다. ‘오봉산’ 줄기인 ‘부산성터’에 올라 이 마을을 내려다보노라면, 마을 주위의 지형이 공교롭게도 미륵의 왼쪽 귀와 흡사하다(그림 1 참조).
‘바람부리봉’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은 좌청룡의 귓바퀴를 이루며, 대이륜(對耳輪) 즉 귀문의 위치가 못둑이 되고, 귓구멍의 위치가 바로 ‘밀구못’으로 비교된다. 그리고 ‘용젖통’과 ‘황새산’, ‘황새등’, ‘진통골못’, ‘약물탕골’, ‘원당골’, ‘긴등’, ‘수박골’, ‘뱀등’, ‘막자골’, ‘대방골’, ‘불켠골’, ‘밀개산’ 6) 등등의 높낮이는 미륵귀의 형상을 더욱 뚜렷이 해주고 있으며, ‘밀개산’은 미륵의 귓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건 멀리 ‘작원성터’까지 축 쳐져 있다. ‘다래만댕이’에서 남으로 뻗어 내린 등성이가 마을의 우백호 노릇을 하고 있으며, 마을 뒤의 분수령을 이룬 주위 산의 지형은 전체적으로 볼 때 바로 미륵귀의 형상이라 할 수 있다.
6)단위 면적당 이렇게 많은 땅이름이 있는 곳도 그리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미륵 신앙을 숭상했던 서라벌이었기에 미륵귀처럼 생긴 마을 이름을 ‘미륵귀’라 붙였음직한데, 경주에선 ‘미륵’을 [miriki]라 하기에 ‘미륵귀’가 변하여 [miriki-kuj]↔[milikuj]↔[milkuj]↔[milku]가 될 수도 있겠으나 설득력은 강하지 못한 일면이 있다.
4. 마무리
‘밀구’ 또는 ‘밀귀’라고도 부르는 자연부락에 얽힌 용의 득천설화와 미륵설화를 현지에서 채집하면서, 2 개의 용난 구덩이와 신선사의 미륵불 및 ‘부처못둑’의 머리 없는 돌부처 등을 답사하였다.
옛 우리말에서의 용은 [miri]였는데, 이것이 된소리화하여 [mili]가 되었고 [mili]↔[milki]로, 나아가 [milki]가 [milkuj]와 [milku]로 변할수 있는 경주말의 언어학적 특성과 실례를 살펴보았으며, 경주지역에서의 용왕먹이는 습속 등을 통하여 용이 갖는 의미도 훑어보았다. 아울러 마을을 둘러싼 야산의 지형이 미륵의 귀와 흡사하여, 미륵[miriki]귀로부터 [mirikikuj]↔[milku]의 가능성도 훑어보았다.
이상의 논의에서 보았듯이, 첫째는 용 근원설(龍根源說)로서, 현존하는 마을 이름의 입말인 [milku] 또는 [milkuj]를, 글말로는 密耳, 蜜耳, 密九, 密龜, 彌耳 등으로 적고 있는데, 이는 표기 방법이 다르달 뿐, 다 같이 용(龍)을 뜻하며, 그것은 옛말인 [miri](龍)가 오랜 세월 음운변화를 일으킴으로써 분화되었다고 해석된다. 이들의 관계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은 6각형이 된다.
[miri]
[mili] [mi-i]
龍
[milkuj] [milku]
密龜 密九
[milki]
이로써 密耳나 蜜耳는 龍 즉 ‘미리’의 소리 옮김인 동시 ‘밀귀’의 소리 뜻 옮김도 되고, 密九와 密龜는 ‘밀구’의 소리 옮김임을 알 수 있으며, 彌耳도 흔히 쓰지는 않지만 ‘미리’의 소리 옮김이라 할 수 있다.
둘째, 미륵 근원설로서 마을의 미륵설화나 지형 등을 토대로 살펴볼 때 ‘미륵머리’나 ‘미륵귀’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서라벌에 있어 龍의 개념은 神과 상통하고, 미륵신앙은 神仙과 상통한다는 것까지 살펴보았지만, 龍과 彌勒이 어떤 동일한 개념인 神이나 神仙에서 분화되었거나 龍과 神仙을 포괄할 수 있는 어떤 용어를 옛말(古語)에서 찾아내지 못하여 아쉬움을 남긴다.
끝으로 이 글에서, 경주의 ‘밀구’란 땅이름은 용의 옛말인 [miri]에다 뿌리를 둠으로써, 하늘이 내려준 천혜의 마을이요 풍요의 마을이란 뜻을 지니며, 오랜 세월 동안 발음이 변해 오는 과정에서 표기 방법이 여러 가지로 다양화된 채 아직까지도 옛말은 물론 그 변화 과정에 있던 말들까지 고스란히 공존하고 있음을 밝혀보았다.
참고 문헌
慶尙北道 敎育委員會 (1984), <慶尙北道 地名由來總覽>
慶州水利誌 편찬위원회 (1983), <慶州水利誌>
권 오찬 (1980), <신라의 빛>, 경주시
울산문화원 (1986), <蔚山地名史>
최 명옥 (1982), <月城地域語의 音韻論>, 영남대학교 출판국
한글학회 (1979), <한국지명총람>
홍 경표 (1985), ‘龍神說話와 그 象徵體系試攷’,
효성여자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한국 땅이름학회 1987. 4. “땅이름”
'우리 식구들 논저-論著'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동석 번역서 - 우암 송시열 (0) | 2010.03.20 |
---|---|
김동석 번역서 - 명가의 고문서 7 (0) | 2010.03.20 |
김주석 지명 연구 - 물목섬의 각시바위 (0) | 2010.03.20 |
김주석 지명 연구-땅이름의 암수 대응 [pot vs. put] 연구 (0) | 2010.03.20 |
김주석 평론-TV 드라마에 나타난 비과학적 사례 (0) | 2010.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