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 공젱이와 미늘


                                    글 : 김주석

                                                         월간 에세이 기고

                                      

   

얻어 걸친 술기운에 거나하게 젖은 김이라, 기생의 잔허리를 끼고 앉은 도포짜리 한량이 말꼬리를 빼며,

“풍류를 알아야 멋인데 말일세, 우리 집 사랑에서 안방으로 건너가자면 말일세, 샛강에다 나룻배를 띄워야 하는데 말일세, 여름이면 ‘낚이’도 드리울 만하다네.”

라며 만석꾼 같은 허풍으로 너스레를 떨더니만, 갑자기 정색을 하고서 좌중에게,

“귀뚜라미를 제주에선 ‘공젱이’라 하는데 말일세, ‘낚시 공젱이’란 무슨 말인지 알아맞혀 보게나, 상금 백 냥을 걸 터이니…….”

둘러앉은 기생들이 거액의 돈에 홀려 저마다,

“귀뚜라미를 미끼로?” 

“낚시 공장(工匠)?” 

“궁둥이 낚시?” 하며 마구 떠들었으나 모두 틀렸단다.

이 한량이 누군고 하니 개화기 때 영남 땅을 입심 하나로 떨어 먹은 정만서란 실존인물인데, 그는 만석꾼은커녕 땡전 고리 한 푼 없는 알건달이었다. 사실, 그의 집 썩은 지붕에선 비가 샜음은 물론, 마당에 패인 도랑으로 미꾸라지가 오르는 걸 두고 그가 뻥 튀겼달 뿐이지, 뭘!

어쨌거나, 앞서 정만서가 말한 ‘낚이’란 ‘낚시’의 경주 말이다. 우리말에 ‘품에 품다’, ‘띠를 띠다’ ‘신을 신다’처럼 명사가 그대로 동사로 전성되는 것이 허다한데, ‘낚이’도 그런 유형에 속한다. 또 낚싯거루를 ‘낚배’, 봉돌을 뜨게 하는 낚싯법을 ‘뜰낚’, 갈앉히는 것을 ‘깔낚’이라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 본딧말을 ‘낚이’였으나, 접미사가 ‘시’나 ‘수’로 변한 통에 그만 중부지방에서는 ‘낚시’로, 평북에선 ‘낚수’로 굳어진 성싶다.

각설하고, 정만서가 거금을 걸어둔 내기 문제의 해답은 ‘미늘’이다. 꾼[一流釣士]이랍시고 뻐기는 주제면서, 이 ‘미늘’이 뭔 줄 모르면, 그건 ‘뭣도 모르면서 송이 장수하는 격’일 테다.

‘미늘’은 낚시 바늘 끝의 안쪽에 돋은 가시랭이 모양의 갈고리다.


낚시에 얽힌 경주 밀구못의 실화 한 토막.

꾼들은 대체로 가물치라면 싫어하는 법이고, 해학 평생을 살다 간 정만서의 묏등 부근의 큰못에도 가물치가 극성이라 꾼들은 끌탕을 했다. 더구나 ‘깻단만 한’ 엄지 가물치는 수 삼 년이 넘도록 도무지 잡히질 않자, 꾼들 사이에 ‘술 한 말’을 내기로 걸었을 만큼 대단한 놈으로 이젠 ‘못 지킴이’ 격이 됐다.

‘깔낚’으로 월척의 관록이 붙은 한 중늙은이가 해거름녘에 큰못 가를 거닐다 엄지 가물치의 엄청난 알자리를 발견하는 행운을 얻었는데, 그건 순전히 빗긴 햇살 덕분이었다.

‘드디어 네놈은 내 미늘에 걸린 고기다.’ 싶어 어쩔 줄을 모르며, 평소에 생각해 뒀던 대로, 간짓대에다가 강철 낚시를 밭으나마 실하게 매고는, 악머구리를 산 채로 꿰어 알자리 쪽으로 겨눠봤으나 어림없이 못 미치는 것이었다. ‘어쩐다지? 풀기가 빳빳한 삼베바지를 적시기도 뭣하고? 에라, 저물녘인데 누가 보랴?’ 싶어진 중늙은이는 바지를 홀랑 벗고 적삼만 걸친 채, 진펄로 내려서니 허벅지까지 물이 차올라 서늘한 촉감에 기분이 좋았다.

조심스레 알자리 속에다가 간짓대 낚시를 드리웠으나, 금방 꿴 개구리가 꼼짝을 않자 몹시 안타까웠다. 초조해진 그는 ‘엄지야 이리 온’ 하는 심사로 간짓대 끝을 율동 있게 잔잔히 끄덕였더니, 개구리도 춤을 추듯 꼼지락거리는지라 제물에 자기도 좋아 엉덩춤이 슬며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러구러 한참이 지난 어느 순간, ‘뻑’하는 소리와 동시에 ‘억쿠우’ 하는 비명 섞인 신음 소리가 수면 위에 동심원을 그리며 물결을 일으켰다. 어찌된 영문일까?

엉덩춤 따라 덜렁이던 중늙은이의 다리 사이에 오그라든 ‘연장’을, 제 새끼 잡아먹으러 온 개구리인 줄 오인한 엄지 가물치가 그 ‘연장’을 무는 소리가 ‘뻑’이요, ‘드디어 내 손으로 엄지란 놈을 미늘에 걸었노라’고 환희에 한 외침이 아니라, 엉뚱한 것이 물리는 충격에 자지러지는 비명 소리가 ‘억쿠우’였던 것이다. 그날로써 중늙은이는 급소에 가해진 크나큰 충격 때문에 백약이 무효였으니, 그 댁 자손들이 애닯아한들 어이하리. 따라서 그 댁 자손들은 가물치를 절대 먹지 않는 불문율을 지켜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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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다 가세요

이제 막 결혼을 해 첫날밤을 맞은 신혼부부가 있었다.

호텔 침대에 나란히 누운 신랑과 신부.

그러나 신랑이 어찌나 쑥스러워하는지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첫날밤을 그냥 보낼 수야 없기에

신랑이 용기를 내어 자신의 몸을 신부의 몸 위로 포갰다.

그러자 신부가 물었다.

'뭐 하세요?'

신랑은 '응… 저쪽으로 넘어가려고….' 하면서 신부의 몸을 내려와 옆자리에 누웠다.

한참 뒤 신랑이 다시 용기를 냈다.

이번에도 신부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뭐 하세요?'

'응… 도로 저쪽으로 넘어가려고….'

그러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지만 별 다른 진척이 없었다.

신랑은 '이번이 마지막이다!'라고 다짐을 하고 용기를 내어

다시 신부의 몸 위로 올라탔다.

이번에도 신부가 물었다.

'뭐 하세요?'

그러나 신랑은 여전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슬쩍 말을 돌려서는 '응, 아까 그 자리로 다시 돌아 가려고'라고 했다.

그때였다.

신부가 기다리는 게 지겨워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면서

나지막히 속삭였다.

.......

.

.

.

.

.

'놀다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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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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