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평 독방, 삶도 죽음도 없는 빈 모습으로 앉다

정휴 스님 '백담사 무문관 일기'
  • 김한수

    발행일 : 2017.10.20 / 문화 A23 면

     

    "열한 시가 되자 창문 한쪽에 뚫어 놓은 구멍으로 점심 도시락이 들어왔다."

    불교의 무문관(無門關)은 스스로 독방 감옥에 가두는 수행 공간이다. 두세 평 공간에 문은 밖에서 걸어 잠그고 석 달에서 3년, 10년을 지낸다. 참선을 하든 잠을 자든 책을 읽든 자유다. 세상과 소통 통로는 작은 밥 구멍 하나. 하루에 한 번 열리는 이 구멍으로 밥이 들어온다. 몸이 아프면 이 구멍에 메모를 써놓는다. 다음 날 밥과 함께 약이 들어온다. 최근 출간된 '백담사 무문관 일기'(우리출판사)는 정휴(正休·66) 스님이 지난 2010년 백담사 무문관에서 보낸 석 달의 기록과 현재 강원 고성 화암사의 작은 암자에서 살아가며 느낀 이야기를 적었다.

    정휴 스님은 197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시조 부문)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7선, 불교신문 사장 등을 지냈다. 그가 무문관행을 결심한 것은 2010년 봄 법정 스님 입적을 겪으면서다. "살아 있을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법정 스님의 입적을 듣고서이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를 찾아 편안하게 눈감은 법정 스님을 만나고 나온 그는 무문관에 들 준비를 한다. "솔직히 말해 나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 갇혀 있었고 몸에 익힌 그릇된 습관과 인습으로 인해 정체되어 있었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나를 정신적으로 뜯어고치지 않고는 끝없는 나락으로 침몰될 것 같았다. (…) 내 삶의 일몰(日沒)이 시작되고 있었다."

    무문관으로 향하는 길, 울창하게 서 있는 나무를 통해 배움을 시작한 그가 든 화두는 '시심마(是甚?·이뭣고)'. 독방에 갇혀 있지만 사색은 무한대로 확대되고, 화두를 들면 두 시간이 훌쩍 흘러간다. 옛 조사들의 선어록을 들추기도 하고 새 소리, 눈 무게를 못 견딘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석 달간의 '뜨거운 겨울'을 보냈다. 마침내 무문관을 나서는 날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다시 한 번 무문관에 들어가서 삶도 죽음도 없는 빈 모습으로 일념(一念)이 만년(萬年)이 되도록 앉아 있고 싶다."

     

    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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