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은 도끼에 찍힌 발등 2

 

 

그런 뼈저린 사업 실패로 인해 나의 대학 생활도 타격을 입게 됐다. 집에서는 등록금 때마다 남아 있던 논을 팔아야 했고, 나는 서울에서 초등학교 코흘리개나 고등학생의 가정교사 자리를 찾아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조직을 운영해 본 경력도 없고 회계나 총무 관련 업무에 대한 이력도 없는 학술 숙부님이 처음부터 조직 간의 상호 감시 감독이 될 수 있도록 체제를 잡아만 뒀어도 그렇게 허망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참허탈하였다. 큰조카 하나 키워 보려고 무던히 노력한 숙부모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건천으로 되돌아온 학술 숙부님은 옛날에 배운 치과기공 일을 다시시작했다. 숙부님은 해방 후 총각 때 치과기공 기술을 습득해서 울릉도에 가서 돈을 적잖게 모아오기도 했으며 부산에 가 있는 동안에는 그일을 한동안 접고 있었다. 아우인 가평이가 치과기공사가 된 것도 학술 숙부님과 관련이 있음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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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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