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사육 1

회고록 2019. 3. 3. 00:50

돼지 사육 1

 

 

어렵사리 3수를 해서 명문대학인 연세대학교에 입학했지만 학비 조달이 큰 문제였다. 그때는 어머니도 힘겨워서 쌀장사를 그만 둔 시기였다. 그래서 나온 안이 온 집안에서 힘을 합해 나를 공부시키는데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로 해서, 우선 잘감보보아구리에 있던 일등호답(一等好沓) 10마지기를 팔아서 학술 숙부님한테 드린 것이다. 그 논은 아무리 가물어도 잘감보 보아구리에서 첫 번째에 있는 논들이기 때문에 가뭄으로 물이 부족할 턱은 없었으니까.


학술 숙부님은 그동안 부산에서 종이 도매 관련 일을 했는데, 잘 아는 식당들이 몇 군데 있으니까 거기서 나오는 잔반(殘飯)을 수거해서 돼지를 길러보기로 작정이 섰다.

 

 

그래서 영도 청학동에다 아담한 방 3개 부엌 2개 마루 1개짜리 단층집을 새로 짓고 넓은 마당에는 돼지우리를 지었다. 그때 울산 숙부님이 집을 지으려고 준비해 둔 서까래 감도 돼지우리를 짓는 데 가져다 썼다. 큰조카 한 녀석을 공부 시키려고 온 집안이 들고 일어난 셈이다. 왜냐하면 나무에도 돌에도 기댈 데가 없는 형편이니까 한 녀석이라도 공부를 시켜서 이 지긋지긋한 질곡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신분 상승도 기대해 봄 직하였으니까.

 

 

축사 바닥은 시멘트로 하고 서까래 감을 잘라 울타리를 만들었다. 돼지를 사다 넣고 아버지와 숙부님이 새벽 4시면 걸어서 1시간 상거에 있는 남포동의 갈비·냉면 집에 가서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를 수거해서 되짚어 10리 길을 무거운 손수레를 끌고 걸어 다녔다.


처음에 나는 아예 공부만 하라고 일에 끼어드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는데, 차츰 일이 고되다 보니, 아버지와 나 둘이서 새벽마다 음식물 찌꺼기를 실으러 왕복 20리 길을 다니곤 했다. 말이 음식물 찌꺼기지 그속엔 쓰다 버린 나무젓가락, 먹다버린 구운 갈비 뼈다귀, 담배꽁초, 때묻은 물수건도 들어 있었다. 음식물 찌꺼기가 풍기는 시면서 이상한 냄새도 견디기 힘들었고, 추운 겨울에 무거운 손수레를 끄는 것은 물론 오르막을 올라갈 때 뒤에서 미는 것도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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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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